[기자의 시각] KBL엔 드라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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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드라마를 보는 건 주인공에게 빠져드는 과정이다. 친숙한 옆집 아저씨가 실은 대단한 실력자였다든가, 비루했던 주인공이 최고가 되는 이야기 등등. 공통점은 시청자가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며 응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포츠도 비슷하다. 리그 인기는 스타의 존재로 갈린다. 최고 선수의 좌절, 무명 선수의 반란, 20년을 팀에 바치는 충성심…. 리그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축구는 3부 리그 팀에서도 스타가 나온다. 스타들은 리그에 오랫동안 머물며 이야기를 만들고, 본인을 계승하는 ‘제2의 ’에게 주인공 자리를 물려준다.
KBL(한국농구연맹)은 그 반대다. 이번 시즌 프로농구는 사실상 외국인 선수 재러드 설린저가 나타난 3월 11일부터 시작했다 해도 무방하다. 설린저의 농구 수준은 다른 선수들보다 한두 단계 더 높았다. 중하위권에 머물던 KGC는 설린저가 합류한 뒤 플레이오프에서 내리 10연승을 거두며 우승했다. 팬들은 물론, 코트 위 선수들마저 설린저만 보고 있었다. 두 달간 KBL을 제패한 설린저는 곧 다른 리그로 떠난다고 한다.
반짝 선수 영입으로 승리는 챙겼지만, 진한 감동은 사라졌다. 재밌게 보던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맥락 없이 패배한 느낌이랄까. 만약 TV 드라마가 이랬다면 시청자 게시판은 실망감에 폭발했을 테다. 올해만이 아니다. 매년 시즌이 끝나면 외국인 선수들이 철새처럼 떠나고, 다음 시즌 또 다른 외국인 선수가 건너와 리그를 주름잡는다. 1년이면 떠날 선수를 열렬히 응원할 팬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90년대를 농구의 전성기로 꼽는다. ‘오빠 부대’ 연세대에 맞서는 강인한 고려대, 양강 구도를 깬 중앙대 스타들이 있었다. 그때 농구 수준이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경기 다음 날 팬들이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송교창(KCC)이 수비수를 넘어 덩크를 찍고, 변준형(KGC)이 화려한 유로스텝을 선보일 만큼 농구 수준이 발전했지만, 인지도는 그때와 비교되지 않는다. 팬들은 뛰어난 기술보다 응원하는 선수들과 함께 땀과 눈물을 흘리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 영입 없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자는 얘기가 아니다.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현재 KBL 외국인 선수는 같은 팀에 네 시즌 이상 머물 수 없다. 에런 헤인즈, 리언 윌리엄스 같은 선수들은 우리나라에서 10년가량 뛰었지만 여러 팀을 전전해야 했다.
지난 시즌 여자 농구는 코로나로 외국인 선수 제도를 없앴는데 오히려 시청률이 올랐다. 리그 4위 삼성생명이 최강이라 불리던 박지수의 KB를 꺾는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KBL은 어떻게 드라마를 만들어낼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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