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대통령의 초상화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갈 즈음에 자신의 공식 초상화를 제작한다. 완성된 초상화는 청와대 세종실에 제막된다.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과 자신의 초상을 나란히 하는 일은, 퇴임을 맞이하는 대통령의 여러 의례 중 하나다.
미국도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를 그려 기념한다. 그런데 방식이 조금 다르다.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는 퇴임 후에 제작된다. 완성된 그림을 백악관에 거는 건 후임 대통령의 몫이다. 백악관의 초상화 제막식은 그래서 특별하다. 정치적 견해가 아무리 달라도 이날만큼은 전·현직 대통령 부부가 한자리에 모여 덕담을 나눈다. 후임자는 전임자의 공로를 상찬하고, 전임자는 후임자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기원한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전통에 균열을 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의 공식 초상화를 제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뿐만 아니라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초상화는 벽에서 떼어 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렸다. 좀스러운 처사라는 비판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행히 신임 대통령 조 바이든은 제막식 전통을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올해 초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트럼프가 치워버린 전직 대통령들의 초상화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트럼프의 초상화가 완성되면 그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제막식을 열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나름 ‘대인배’의 면모를 보인 것이다. 과연 트럼프가 바이든의 초청에 응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이처럼 백악관의 제막식 전통은 미국의 정치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 정파 간 대립이 악화되면 그 맥은 언제든 끊길 수 있다. 그러므로 후임자로 하여금 전임자의 초상을 기리도록 하는 이 문화는, 언제나 성숙한 정치를 유지하자는 자기 다짐일 수 있다. 정부는 정직하게 나라를 운영하고, 정파가 달라도 공은 기꺼이 인정하자고 말이다. 우리도 대통령의 초상화를 임기 후에 제작하면 어떨까. 후임자가 열어주는 제막식에 당당히 걸어 들어가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정치에 조금은 더 신경을 쓰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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