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슬기로운 가정생활

남상훈 2021. 5. 13.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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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있다 보니 주례 설 일이 왕왕 있다.

선뜻 나설 주제는 못 되어도 제자들이 부탁을 하는데 그냥 말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자 동생은 형수가 일러준 대로 어제 술에 취해서 형이 자기에게 논 문서를 주었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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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있다 보니 주례 설 일이 왕왕 있다. 선뜻 나설 주제는 못 되어도 제자들이 부탁을 하는데 그냥 말 수는 없는 일이다. 주례사를 준비하여 열심히 말을 해보지만 듣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젊은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 말할 때는 좀 자신이 있지만, 양가 부모님께 어떻게 하라고 할 때는 공연히 뒤통수가 따갑다. 나도 잘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며, 누구나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설화 가운데 ‘의 좋은 동서’가 있다. 형제가 살았는데 형은 부자고 동생은 가난했다. 추수철이 되어 며느리 둘이 멍석에 나락을 펼쳤는데 형 나락은 많고 동생 나락은 적었다. 시어머니는 작은아들이 못사는 게 딱해서, 큰아들네 멍석에 있는 나락을 작은아들네 멍석 쪽으로 몰래 옮겨두었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는 자기집 몫만 거두어가고 나머지는 멍석에 그대로 두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큰며느리는 무슨 수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을 취하도록 술을 먹인 후 시동생에게 논 문서를 건네주었다. 술에서 깬 큰아들은 동생에게 무슨 영문인지 물었다. 그러자 동생은 형수가 일러준 대로 어제 술에 취해서 형이 자기에게 논 문서를 주었다고 대답했다. 그때 큰며느리가 나서서,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며 시동생 편을 들었다. 이 이후로 두 형제는 모두 번창하여 잘살았다.

어쩌면 이 전 과정 속에 해답이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똑같은 자식인데 한 자식은 가난하게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어머님의 마음과, 비록 형제간이지만 자기 몫보다 더 온 나락을 받으려 하지 않는 작은 며느리의 마음과, 그 딱한 사정을 보고 특단의 대책을 세우는 큰며느리의 마음과, 선의에서 나온 형수의 제안을 수용하는 동생의 마음과, 술김에 저지른 일임을 핑계 삼아 동생 살림을 보태주려는 형의 마음이 아름답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삐끗한다면 해결은 고사하고 더 얽히고 말 것이다.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그로 인해 화목하게 되는 이야기는 흔하다 못해 진부한 편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는 일 못지않게, 그 마음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근본 없는 올곧음과 대책 없는 자존심으로 일을 그르친 적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반성하게 된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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