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슬기로운 가정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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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있다 보니 주례 설 일이 왕왕 있다.
선뜻 나설 주제는 못 되어도 제자들이 부탁을 하는데 그냥 말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자 동생은 형수가 일러준 대로 어제 술에 취해서 형이 자기에게 논 문서를 주었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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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설화 가운데 ‘의 좋은 동서’가 있다. 형제가 살았는데 형은 부자고 동생은 가난했다. 추수철이 되어 며느리 둘이 멍석에 나락을 펼쳤는데 형 나락은 많고 동생 나락은 적었다. 시어머니는 작은아들이 못사는 게 딱해서, 큰아들네 멍석에 있는 나락을 작은아들네 멍석 쪽으로 몰래 옮겨두었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는 자기집 몫만 거두어가고 나머지는 멍석에 그대로 두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큰며느리는 무슨 수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을 취하도록 술을 먹인 후 시동생에게 논 문서를 건네주었다. 술에서 깬 큰아들은 동생에게 무슨 영문인지 물었다. 그러자 동생은 형수가 일러준 대로 어제 술에 취해서 형이 자기에게 논 문서를 주었다고 대답했다. 그때 큰며느리가 나서서,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며 시동생 편을 들었다. 이 이후로 두 형제는 모두 번창하여 잘살았다.
어쩌면 이 전 과정 속에 해답이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똑같은 자식인데 한 자식은 가난하게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어머님의 마음과, 비록 형제간이지만 자기 몫보다 더 온 나락을 받으려 하지 않는 작은 며느리의 마음과, 그 딱한 사정을 보고 특단의 대책을 세우는 큰며느리의 마음과, 선의에서 나온 형수의 제안을 수용하는 동생의 마음과, 술김에 저지른 일임을 핑계 삼아 동생 살림을 보태주려는 형의 마음이 아름답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삐끗한다면 해결은 고사하고 더 얽히고 말 것이다.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그로 인해 화목하게 되는 이야기는 흔하다 못해 진부한 편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는 일 못지않게, 그 마음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근본 없는 올곧음과 대책 없는 자존심으로 일을 그르친 적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반성하게 된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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