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광주의 응어리 반성없는 삶 겨누다

김신성 2021. 5. 1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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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국 감독 신작 '아들의 이름으로'
안성기 살기 가득한 눈빛 연기 압권
"뉘우치지 않는 책임자들 대신 단죄"
41년 지났지만 여전히 진실 안갯속
가해자들 양심고백 용기 내길 기대
안성기의 눈빛 연기가 인상적인 ‘아들의 이름으로’는 속죄하지 않는 가해자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면서 피해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영화사혼 제공
1980년 5월 20일 오후, 제3공수여단은 광주역에 M60 기관총을 설치한 후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발포, 다수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다음날인 21일 정오 무렵 전남도청 앞을 메운 시위대를 향해서도 집단 발포가 자행됐다. 인근 주요 건물 옥상에 배치되어 있던 11공수여단 저격수들은 놀라 흩어지는 시위대에 조준 사격했다. 22일 이후엔 광주 외곽을 봉쇄하던 3공수여단이 광주교도소 감시탑과 건물 옥상에 M60 기관총을 설치하고, 저격용으로 M1 소총에 조준경을 부착해 시민들을 살상했다.

5·18 당시 계엄군으로 나섰던 공수부대원들의 진술이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지난 12일 발표한 내용이다. 계엄군의 조준 사격은 그동안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가해자들이 직접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격한 시위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포했다는 전두환 신군부의 ‘자위권’ 주장이 허구라는 게 또다시 밝혀진 셈이다. 이번 증언은 발포 명령자를 가려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기관총까지 난사하며 진압한 신군부는 책임을 오히려 시위대에 씌우려 했다. 시위대가 지녔던 카빈총으로 서로 오인 사격해 숨진 것이라는 문서를 작성한 것이다. M1 소총에 의한 사망은 시위대가 쏜 것으로 둔갑시켰고, M60 기관총탄에 의한 사망은 집계조차 하지 않고 기타 사망자로 분류했다.

조사위는 양심 고백에 동참한 계엄군에 대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할 방침이다. 트라우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당시 11공수부대원 2명이 피해자에게 직접 사죄할 뜻을 밝혀, 조사위 측은 피해자를 찾아 용서와 화합의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앞서 7공수여단 출신의 A씨는 지난 3월16일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자신의 발포로 숨진 고(故) 박병현씨 유가족을 만나 사죄한 바 있다.

조사위 관계자는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장교나 병사들의 용기 있는 고백과 증언이 나오고 있다”며 “41년이나 무겁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슴에 담고 살아왔는데, 이제라도 진실을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 반목과 갈등, 폄훼와 왜곡을 극복하고 대화합할 계기가 마련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정국 감독의 새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는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상호보완적이면서 놀랍도록 닮아있다. 개봉과 조사위 발표 시점조차 맞물렸다. “가해자들의 제대로 된 반성 없이는 피해자들의 고통도 진정으로 치유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 감독은 “가해자 가운데 누군가 용기를 내어 양심 고백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무려 41년이 지난 2021년, 또다시 봄이 돌아왔지만 그때의 진실은 아직도 온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악행에 대한 고백은 선행의 시작이다”(아우구스티누스)와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소크라테스)는 두 개의 명언은 이 영화를 끌어가는 양대 축이다.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는 오채근(안성기)은 유독 한 손님의 호출을 기다린다. ‘왕년의 투 스타’인 박 회장(박근형)이다. 그의 주변을 맴도는 채근의 눈빛엔 어느 순간 분노가 비치지만 망설임이 따른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거리에 나온 시민들을 향해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이 펼쳐지던 1980년 5월 광주, 그곳에 오채근과 박기준이 있었다. 채근은 그때를 잊지 못하고 매일 악몽을 꿀 만큼 괴로운 삶을 살아내고 있다. 반면 박기준은 평안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호의호식하며 삶을 즐긴다.

채근이 어렵게 입을 연다. “그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어떻게 그렇게 편히 잘 살 수 있었는지…” 하지만 당시 책임자 중 한 사람인 박기준은 몹시도 쉽게 답을 건넨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그때 일은 다 역사가 평가해줄 거야. 남은 인생 즐겁게 살아야지. 힘들면 교회로 와, 하나님은 다 용서해준다.”

안성기는 그야말로 차곡차곡 벽돌을 쌓아가듯 연기한다. 그간 보여주던 익살스러운 웃음기나 선한 모습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살기 가득한 눈빛을 한순간 내뿜는다. 오래 남을 만한 표정이다.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이 이 영화를 보고 무언가를 반드시 느끼길 바란다”는 그는 “반성을 하고 용서를 구해야 맞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광주 사람들은 너무 착하다. 이토록 힘든 고통을 겪었는데도 ‘왜 아무도 직접 복수할 생각을 안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 감독은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노자의 말처럼 진짜 착한 사람은 물과 같다는 뜻을 곱씹으면서 ‘그래, 영화에서라도 한번 그들의 응어리를 풀어주자’는 쪽으로 극의 방향을 잡았다”고 털어놓는다. ‘복수를 한 번 해주자’는 것, 그가 들려준 연출의 변이다.

“군인으로서 명령을 따랐을 뿐 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죄는 바로 아무런 생각 없이 행동한 것입니다. 정말 묻고 싶습니다. 그런 짓을 하고도 맘 편히 살고 있는지.”

극중 오채근이 말한다.

“살인명령을 내린 자들은 아무런 반성조차 안 하는데 왜 피해자들만 평생 고통을 받아야 하나요. 늦었지만 …, 아직도 뉘우치지 않는 책임자들에게 대신 벌을 내립니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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