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유령 간호사'
[경향신문]
스스로를 ‘유령 간호사(ghost nurse)’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수술실 등에서 바쁘게 일하는데 근무를 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는다. 업무 자체가 불법이라 존재하지만 존재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부족한 의사를 보충하기 위해 간호사나 응급구조사, 의료기사 등에서 임의 차출한 진료보조인력, 곧 PA(Physician Assistant)가 그들이다. PA의 대부분(약 95%)이 간호사여서 현장에선 수술실 전담간호사, PA간호사 등으로 불린다.
국제간호사의날인 지난 12일, PA간호사들이 좌담회를 열어 충격적인 무면허 의료현장을 고발했다. 12년차의 한 간호사는 수술에 늦은 집도의를 대신해 환자 복부를 절개한 뒤 복강에 배액관을 삽입, 충수돌기와 담낭, 위장을 절제하는 “전임의 수준의 불법의료행위”를 했다고 폭로했다. 신규 간호사에게 의사 아이디(ID)로 처방을 내는 법부터 가르치는 사례는 애교 수준이었다. 환자의 동맥라인(A-line)을 잡다 신경을 잘못 건드려 팔을 절단해야 했던 사례도 나왔다. 폭로에 나선 PA간호사들이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된다.
문제는 이런 PA들의 무면허 행위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법’ 시행으로 전공의 수련 시간을 주당 80시간 이하로 제한한 것이 이유이다. 결국 수술이나 처치, 처방, 진료기록지 작성 등 전공의들 업무를 PA간호사들이 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전공의 파업 사태가 혼란 없이 마무리된 이면에도 PA간호사들이 있었다. 처음엔 흉부외과 등 기피하는 과에 집중배치되던 PA들은 점차 외과, 내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등 모든 과로 확대되고 업무 범위와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PA는 대략 1만명으로 추산된다. 언제까지 이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불법의료를 방치할 것인가. 외국에서는 간호사를 추가로 교육시켜 전문성과 정당한 대우를 보장하는 전문간호사 직군을 두고 있다. 국내 간호사들은 전공의를 더 뽑거나 의료법상 모호한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들에게 떳떳한 이름과 일을 주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 아니면 일을 시키지 말든가.
송현숙 논설위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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