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암컷 수컷 모두 연구한 덕분에 수월성 얻었다"..韓 '젠더 혁신' 논의 급물살

조승한 기자 2021. 5. 1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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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특성을 반영한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에 따른 연구 선진화 토론회’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GISTeR)·조승래 의원 공동 주최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김은준 기초과학연구원(IBS)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장팀은 2019년 자폐증이 남자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이유를 규명한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자폐증은 남자에게 5배 정도 빈도가 높은 질환으로 알려져있다. 연구팀이 자폐증을 일으키도록 유전자를 결핍시킨 생쥐를 관찰해보니 수컷 생쥐만 부모에게서 떨어졌을 때 울음소리가 큰 자폐 증상이 나타나는 현상을 확인했다. 조사 결과 수컷만 신경전달 균형이 무너지는 반면 암컷은 균형 시스템을 지키는 유전자가 발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단장은 “수컷만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면 신경전달 저하가 자폐 원인이라는 점만 찾아냈을 것”이라며 “암수를 따로 봤더니 결과를 잘 해석할뿐 아니라 자폐를 치료하는 메커니즘도 찾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GISTeR)와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공동 주최한 ‘성별특성을 반영한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에 따른 연구 선진화 토론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김 단장 이같은 자신의 연구 사례를 제시하며 “과학기술 연구에서 성별 특성을 고려해야 수월성을 얻을 수 있다”며 “성별 특성 고려가 과학적이고 유용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간 과학기술계에서는 과학 연구에서 성별에 따른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2009년 론다 시빙거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가 그간 과학 연구에서 남녀의 생리학적인 차이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2014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연구에 사용되는 동물의 성비를 맞춰야 한다는 규정을 추가하는 등 논의가 확산됐다. 

유럽도 2014년 ‘호라이즌 2020’ 프로그램을 통해 성별 특성 경쟁력을 확보하는 연구들을 다수 수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부터 성별 특성을 연구 제안서 평가에서 수월성 평가 항목으로 반영하고 있다. 

성별 특성에 대한 논의가 일찍 시작된 해외 선진국에서는 성별 특성 고려가 남녀 모두의 혜택으로 돌아간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가령 골다공증은 그간 여성 질환으로 여겨져 여성을 위주로 연구가 진행되면서 남성 치료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분석이 이뤄진 뒤에야 남성의 골다공증 조기진단이 가능해졌다.

국내에서는 조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이 지난 3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물꼬가 트였다. 개정안에는 연구개발(R&D)에 성별 특성을 고려하고, 기술영향평가를 실시할 때 대상기술의 성격을 감안해 성별 특성분석을 반영하며, 과학기술통계와 지표 조사, 분석에도 성별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된 만큼 이를 추진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교육 과정에서도 젠더라는 요소가 과학기술 분야에서 다뤄져야 할 인자라는 걸 인식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며 “이를 인식하면 새로운 연구분야 뿐 아니라 사업분야도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창모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특임교수는 “기업에서도 사회적 책임 경영(ESG)의 하나로 젠더혁신을 반영하는 쪽으로 논의되고 있다”며 산업계도 성별 특성을 고려한 젠더 혁신에 신경쓰고 있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도 과학기술 현장의 제도화를 통해 힘을 싣겠다는 계획이다.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5차 과학기술기본계획에 성별특성을 고려하겠다”며 “기술영향평가와 연구비 조사분석 과정에서 민간과 연구현장의 의견을 받아 젠더 혁신 고려가 시급한 분야를 선정하고 분야별 특성 분석결과를 반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혜숙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장은 “세계적으로 과학계가 여성과학자 수를 늘리려고 하다 보니 성별 비율을 이야기하는 ‘젠더 균형’과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며 “젠더 혁신은 연구과정에 성별 특성을 반영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연구개발 과정에서 특성 성별만 중심으로 실험이 진행될 경우 해당 연구효과가 특정 성별에만 효능을 보이는 등 불완전한 지식이나 기술이 창출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법 개정을 계기로 이런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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