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너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5·18 보듬는 문화계

오승훈 2021. 5. 1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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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뮤지컬·연극·전시 등
5·18 정신 기리는 문화 행사 잇따라
다큐멘터리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 엣나인필름 제공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 /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정태춘 ‘5·18’)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 독재 정권에 맞서다 스러진 1980년 5월 광주의 넋들을 가장 먼저 위로한 것은 노래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부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5월의 노래’, 정태춘의 ‘5·18’ 등은 그날의 항쟁과 학살을 아픈 서정성으로 담아낸 명곡들이다. 이처럼 5·18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아물지 않는 상흔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문화 콘텐츠로 되살아나고 있다. 5·18 41주기를 맞은 올해도 스크린, 티브이, 무대, 전시장 등 문화계 곳곳에서 이런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극장에선 그날의 광주를 기리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상영 중이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임흥순 감독의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는 광주와 197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의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교차 편집하면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고통과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좋은 빛’은 광주(光州)를, ‘좋은 공기’는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Good Air)를 의미한다.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실종된 자식을 찾고자 1977년부터 시작된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머니들의 5월 광장 침묵 행진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광주의 어머니들은 행방불명된 자식의 사진을 부여잡은 채 항쟁의 흔적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거리로 나선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엣나인필름 제공

<좋은 빛, 좋은 공기>가 피해 유족들의 서사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12일 개봉한 이정국 감독의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는 가해자에 대한 단죄를 주제로 삼는다.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는 채근(안성기)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자들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는다. 영화는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며, 사죄와 반성도 없이 그저 흘러만 가는 5·18 진상규명의 현주소를 거칠게 되묻는다.

영화제도 그날의 의미를 기린다. 디엠제트(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14~28일 2주간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다큐멘터리 5편을 상영한다. <우리가 살던 오월은>(박영이 감독), <징허게 이삐네>(정경희 감독), <손, 기억, 모자이크>(박은선 감독), <속삭이는 잔해와 소리 없이 떨어지는 잎들>(보 왕 감독), <쉬스토리>(황준하 감독) 등 상영작은 모두 1980년 이후 태어났거나 성장해온 아시아 감독의 연출작으로, 이른바 ‘포스트 5·18 세대’가 광주를 바라보고 자신의 기억으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누구나 쉽게 5·18과 관련한 짧은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만든 영화를 상영하는 ‘5·18 3분영화제’도 오는 27일부터 6월2일까지 온라인으로 열린다. 영화제는 지난 10일 출품작 가운데 본선 경쟁 진출작 39편을 선정해 발표했다.

드라마 <오월의 청춘>. 한국방송 제공

안방극장에서도 그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국방송2>(KBS2)가 지난 3일 시작한 월화드라마 <오월의 청춘>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운명처럼 서로에게 빠져버린 서울대 의대생 황희태(이도현)와 광주 평화병원 응급실 간호사 김명희(고민시)의 사랑 이야기다. 그동안 시대의 아픈 현실을 다룬 드라마들이 역사극에 가까웠다면, <오월의 청춘>은 그 시대가 평범한 청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멜로드라마라는 점이 이채롭다.

광주에선 공연과 전시로 그날의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가 마련된다. 5·18 당시 항쟁한 광주 시민 이야기를 재해석한 창작 뮤지컬 <광주>가 15~16일 광주 남구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광주 시민들을 만난다. 군복 대신 평상복을 입고 시민 사이에 침투해 시위 정보를 캐내는 특별부대(편의대)원 박한수가 광주 시민의 참상과 항거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고뇌와 변화를 담았다. 지난해 10월 초연 당시 비판받았던 일부 대목을 보완해 훨씬 더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뮤지컬 <광주>. 라이브(주)·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오월연극제도 17~19일 광주 동구 민들레소극장에서 열린다. 1980년 5·18 광주의 고통과 상처를 1987년 6월항쟁으로 꽃피워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저승에 온 별>, 5·18 당시 행방불명자와 가족 이야기를 담은 <언젠가 봄날에>, 5·18 첫 희생자인 고 김경철의 어머니 임금단과 6월항쟁 현장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던 민족화가 이상호의 만남을 그린 <어머니와 그>를 무대에 올린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아시아문화원은 5월 광주의 가치를 국악과 클래식, 전통·현대무용 등으로 한데 담아 전하는 ‘대동춤Ⅱ’를 16일 오후 5시 선보인다. 공연은 <국악방송> 유튜브 채널로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경내 민주평화교류원 내 옛 전남경찰국 건물 뒷면에 설치된 미디어월(대형 영상 투사 스크린)을 통해 새달 말까지 5·18 민주화운동 관련 영상 10편을 매일 오전 9~10시, 낮 12~1시, 오후 5~6시에 상영한다. 해당 영상을 아시아문화전당 누리집과 유튜브 채널로도 볼 수 있다.

오승훈 남지은 정혁준 노형석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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