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 일반상대성이론의 성립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2021. 5. 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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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면서 “만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몰랐다면 결코 상대성이론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하며 그 중요성을 인정했다. 위키피디아 제공

무거운 돌과 가벼운 돌을 같은 높이에서 떨어뜨리면 어떤 돌이 더 빨리 떨어질까? 이 질문은 짧게는 17세기의 갈릴레오까지, 길게는 기원전 4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적인 세계관으로 설명한다. 무거운 돌은 무거움의 본성을 찾아 지구로 향하고 가벼운 돌은 가벼움의 본성을 찾아 천상으로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관은 유럽의 2000년을 지배했다.

갈릴레오는 간단한 사고실험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무너뜨렸다. 가벼운 돌과 무거운 돌을 함께 묶어서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무거운 돌의 입장에서는 가벼운 돌이 위로 잡아당기고 있으니까 혼자 낙하할 때보다 더 천천히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돌이 묶여 있으므로 전체적으로는 더 무거워졌기 때문에 묶인 두 돌은 더 빨리 떨어져야 한다. 이는 모순이므로 가벼운 돌과 무거운 돌이 함께 떨어져야 한다고 추론했다. 그러나 갈릴레오도 왜 돌멩이가 땅으로 떨어지는지는 몰랐다.

이 문제의 답을 찾은 사람은 갈릴레오 후속 세대였던 뉴턴이었다. 뉴턴은 힘의 개념을 중심으로 자신의 역학체계를 완성시켰고, 중력이라는 힘의 존재를 특정해 그와 관련된 법칙(만유인력의 법칙)을 수학적으로 기술했다. 뉴턴역학에서 무거운 돌과 가벼운 돌이 어떻게 떨어지는가를 설명하자면 조금 복잡하다. 뉴턴의 운동 제2법칙, 즉 가속도의 법칙(F=ma)에 따르면 일정한 가속도를 얻기 위해서는 질량이 클수록 큰 힘이 필요하고 질량이 작으면 작은 힘으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물체의 질량에 비례하는 힘이 작용하면 질량에 상관없이 물체의 가속도는 항상 똑같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런 힘이 우리 주변에 있다. 바로 중력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르면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는 각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한다. 이런 힘이 두 물체에 작용하면 두 물체의 가속도가 같아진다. 가속도란 단위시간당 속도의 변화이다. 지표면에서 자유 낙하하는 물체는 매초 일정한 크기로 속도가 커진다. 두 물체의 질량이 달라도 가속도가 같다면 결국 동시에 땅에 떨어진다.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에서는 조금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자유 낙하하는 두 물체의 관점에서는 자신들은 아무런 힘도 작용하지 않는 좌표계에 가만히 있고 지구가 일정한 가속도로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 좌표계에서는 어느 돌멩이가 더 빨리 떨어지는가 하는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저 지구라는 엄청나게 큰 돌멩이가 자신들에게 다가올 뿐이다. 

등가원리가 새로운 중력이론을 향한 결정적인 돌파구임을 깨달았지만 천하의 아인슈타인에게도 그 과업을 완성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몇 년을 돌고 돌아 아인슈타인이 부여잡은 원리는 공변성이었다. 공변성이란 방정식이 좌표계를 바꾸더라도 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성질이다. 등가원리를 적용해 공변성을 유지하는 방정식을 구성하면 거의 필연적인 수학적 과정(대단히 복잡하고 어렵지만)을 거쳐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이다. 

중력장 방정식을 수학적으로 이해하고 풀기 위해서는 물리학과 대학원 수준의 학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물리적인 의미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등가원리에 따르면 중력은 가속운동으로 바꿔치기할 수 있다. 그런데, 특수상대성이론의 경험에서 봤듯이 움직이는 좌표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다이나믹하게 변한다. 가속운동을 한다면 시간과 공간이 더욱 복잡하게 변할 것이다. 아주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4차원 시공간에 굴곡이 생겨 휘어질 것이다. 이 결론을 추론의 출발점과 연결하면, 중력이란 결국 시공간의 휘어짐이라는 놀라운 결과에 이른다. 중력장 방정식은 이 결론을 수학적으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른 중력의 작용. 태양이 시공간을 휘게 하고 지구가 결국 휘어진 시공간을 벗어나지 못한 채 태양의 주위를 돌게 된다. 과학동아DB

실제로 중력장 방정식의 좌변은 시공간의 휘어짐을 수학적으로 기술한 기하학이다. 이때의 기하학은 고색창연한 에우클레이데스의 유클리드 기하학과는 다른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다섯 공준 중에서 이른바 ‘평행선 공준’을 만족하지 않는 기하학 체계이다. 평행선 공준이란 2차원 평면에서 한 직선과 직선 밖의 한 점이 있을 때, 그 점을 지나면서 원래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오직 하나 존재한다는 공준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평평한 평면에서는 직관적으로 아주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공 표면과 같은 2차원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구본에서 경도선을 하나 생각해 보자. 적도상에서 그 경도선 밖에 있는 점에서 그 경도선에 평행한 선을 지구표면을 따라 그으면 그 또한 새로운 경도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새 경도선은 지구 표면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극지방에서 원래의 경도선과 만나게 된다. 이런 평면에서는 평행선 공준을 만족하는 평행선이 하나도 없다. 반대로 말안장과 같이 생긴 표면에서는 평행선 공준을 만족하는 평행선을 수없이 많이 그릴 수 있다. 또한 평면에서는 삼각형을 그리면 그 내각의 합이 180도이지만, 구의 표면에서 삼각형을 그리면 그 내각의 합은 180도를 넘고, 말안장 표면에서 삼각형을 그리면 내각의 합이 180도보다 작다. 

이런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겨우 19세기에 와서야 가우스, 로바체프스키, 보여이 등의 노력으로 정립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의 좌변은 그렇게 정립된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성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편 중력장 방정식의 우변은 시공간에 퍼져 있는 에너지(질량을 포함해서)의 분포를 기술한다. 그러니까 중력장 방정식은, 에너지가 퍼져 있으면 그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말하자면 현대화된 중력이론이다. 흔히 중력장 방정식을 그냥 ‘아인슈타인 방정식’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이 중력장 방정식을 완성한 것은 1915년 11월이었다.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지 꼭 10년이 되던 때였다. 방정식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수학에 능통했던 친구 마르셀 그로스만으로부터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수학에 관한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로스만은 취리히 공과대학에 다닐 때부터 절친한 사이로 그로스만이 아인슈타인에게 수학 노트를 빌려주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후 아인슈타인이 특허청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로스만 아버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무튼 아인슈타인이 수학에서 아주 천재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럼에도 당연히 평균 이상은 되었다.) 1912년 동료 과학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학에 대한 자신의 존경심을 표하며, 새로운 중력이론을 찾기 위한 여정에 비하면 특수상대성이론은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고 비유할 정도였다.

아인슈타인과 대학동기였던 수학자 그로스만은 아인슈타인에게 고등수학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중력장 방정식은 에너지 분포에 따라 시공간이 어떻게 휘어져 있는지를 결정하는, 즉 시공간의 구조를 결정하는 방정식이다. 이렇게 결정된 시공간 속에서 물체(지구와 태양 등)는 어떻게 움직일까? 바로 굽은 시공간에서의 최단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이 최단경로를 측지선(geodesic)이라 부르며, 관련된 방정식을 측지선 방정식이라 한다.

요컨대,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첫째, 시공간에 에너지가 어떻게 분포해 있는지를 확인하고 둘째, 그로부터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 시공간의 구조를 결정하고 셋째, 그렇게 결정된 시공간에서의 측지선 방정식을 풀어 물체의 운동방정식을 구하는 것이 대체적인 과정이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들 때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이 있었다. 자신의 새 중력이론이 어찌됐든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일맥상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특수상대성이론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어찌됐든 오랜 세월 태양계 수준에서는 아주 잘 작동하는 이론이었다. 그래서 만유인력의 법칙은 새로운 중력이론의 한 특수한 경우로 귀착돼야 한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이 중요하게 고려했던 사항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요구사항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를 만족하지 않는 이론적 시도들은 모두 기각하기도 했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이 조건을 만족하는 방정식을 찾았고 그것이 중력장 방정식이다. 이 조건의 흔적이 중력장 방정식에도 남아 있다. 시공간에서 에너지의 분포를 나타내는 방정식의 우변에는 아주 익숙한 뉴턴의 중력상수 G가 들어가 있다. G를 포함한 상수값은 임의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중력이 약하고 시간에 대해 정적이며 물체가 광속에 비해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상황, 즉 고전적인 극한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재현하기 위해서 맞춤형으로 정해진 값이다. 

상대론적인 새로운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에 고전적인 뉴턴역학의 중력상수가 등장한다는 점은 무척 인상적이다. 과학의 발전이 마치 정치적인 혁명과도 같이 불연속적이라는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에 따르면 경쟁하는 패러다임 사이에는 공유하는 가치가 거의 없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종교적 개종에 비유될 정도로 단절적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을 바라보면 과학이 발전하는 궤적은 단절적이라기보다 포괄적이다. 새로운 이론체계는 언제나 이전의 성공적인 체계를 포함하면서 적용 범위를 넓혀 나간다.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광속을 무한대로 놓으면 (즉, 모든 물체의 속도가 광속에 비해 대단히 느리면) 특수상대성이론은 고전역학으로 돌아간다. 

놀랍게도 이는 미시세계를 기술하는 양자역학에서도 사실이다. 양자역학은 확률론적 세계관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결정론적인 세계관의 고전역학과는 전혀 다르다. 그 결과 고전역학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현상들이 종종 등장한다.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큰 단절을 꼽으라면 양자역학의 등장이 모든 영역을 통틀어서 아마 3위 안에는 충분히 들 것이다. 그런 양자역학에서조차 미시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상수인 플랑크상수를 0으로 보내는 극한에서는 고전역학의 결과로 되돌아간다. 이를 ‘대응원리(correspondence principle)’라고 부른다.

대응원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학이 발전하는 궤적은 단절적이고 불연속적이라기보다 포괄적이고 연속적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이 이론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이런 식의 대응원리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면서 개발됐다. 만약 누군가 새로운 이론을 개발했는데, 적절한 조건에서 예전의 성공적인 이론을 재현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이론이 성공적이라고 받아들일 과학자는 거의 없다. 낡은 이론이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는 데에 일종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셈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정신이 과학에서도 이렇게 작동하고 있다. 

과학동아DB

※참고자료 

데니스 오버바이, 《젊은 아인슈타인의 초상》(김한영·김희봉 옮김), 사이언스북스.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jongphil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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