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대사는 "아" 하나..시청각장애 다룬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오승훈 2021. 5. 1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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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소통의 도구이지만, 너무 오염된 까닭에 자주, 더 큰 불통을 낳는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 는 여전히 장애인 인권이 열악한 국내에서 최초로 시청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지만, 시종 유쾌하고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여우비 내리는 날, 난생처음 비를 맞고 기뻐하는 은혜를 재식이 파라솔을 들고 따라다니는 장면과, 은혜가 손바닥의 촉감으로 재식과 소통하는 대목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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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시청각장애인 소재 영화 12일 개봉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스틸컷. 파인스토리 제공

말은 소통의 도구이지만, 너무 오염된 까닭에 자주, 더 큰 불통을 낳는다. 지난 12일 개봉한 이창원·권성모 감독의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말과 소리가 없어도 진정성만으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작은 행사대행업체를 운영하는 재식(진구)은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던 내레이터 모델 지영이 갑작스럽게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영안실로 향한다. 지영에게 꿔준 돈을 받지 못하게 된 재식은 그의 집을 찾고, 그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지영의 딸 은혜(정서연)와 조우한다. 은혜는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는 시청각장애인. 은혜 아빠는 연락을 피하고 재식은 집주인으로부터 전세 만기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듣는다. 마침 사무실 임대료가 밀려 거리로 나앉게 된 재식은 전세보증금을 노리고 은혜 아빠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오로지 돈 때문에 장애아를 돌보게 된 재식은 소통이 안 되는 은혜와 소동을 벌이고 이웃 주민들은 이런 그를 수상쩍게 바라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은혜가 살던 집은 채무로 인해 가압류가 되고 전세보증금도 날아가버린다. 생전 지영이 이모에게 돈을 꿔줬다는 것을 알게 된 재식은 은혜와 함께 전북 정읍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다는 이모를 찾아 나선다. 그사이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던 은혜는 어느덧 그를 아빠로 여기고, 타인으로부터 단 한번도 진심 어린 사랑을 받아 본 적 없던 재식에게 은혜는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스틸컷. 파인스토리 제공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여전히 장애인 인권이 열악한 국내에서 최초로 시청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지만, 시종 유쾌하고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여우비 내리는 날, 난생처음 비를 맞고 기뻐하는 은혜를 재식이 파라솔을 들고 따라다니는 장면과, 은혜가 손바닥의 촉감으로 재식과 소통하는 대목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들이다.

장애아와 건달이 부녀간으로 엮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유쾌하면서도 뭉클하게 그려낸 영화는, 정반대의 캐릭터가 갈등과 화해를 거치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버디무비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른다. 여기에 배우들의 호연은 극의 몰입감을 배가시키며 전형적인 설정마저도 지루하지 않도록 만든다. 주연배우 진구는 겉으로는 거칠지만, 속은 따스한 재식의 캐릭터를 익살스럽게 연기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영화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특히 지영의 이모를 찾아 나선 길에서 졸지에 농장 일을 거들게 된 재식이 수박을 깨뜨린 실수를 숨기려 능청 떠는 장면은, 진구표 코믹 연기로 남을 만하다.

또한 7살 아역배우 정서연의 연기도 이채롭다. “아”라는 대사 하나로 시청각장애인의 기쁨, 슬픔, 괴로움을 다양하게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강신일, 장혜진, 박예니 등 조연배우들의 안정적 연기도 영화를 받치는 힘이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스틸컷. 파인스토리 제공

이 영화는 시청각장애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률안, 이른바 ‘헬렌켈러법’의 국내 제정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영화 속에서 은혜는 시각장애인 교육과 청각장애인 교육 과정 어디에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이 규정한 15가지 장애 유형엔 시각 및 청각 기능이 함께 손상된 시청각장애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은혜와 같은 시청각장애인들은 시각장애나 청각장애 가운데 하나를 골라 장애 등록을 한 뒤 제한적인 복지서비스만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시청각장애인은 전국적으로 5천명에서 1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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