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전체가 감옥, 어딜 가도 폭탄 떨어져"
[경향신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역인 가자지구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팔레스타인 주민 마제드 알라예즈(50)는 12일(현지시간) “이 전체 영토는 작은 감옥이다. 어디를 가든 당신은 공습의 표적이 된다”고 말했다. 폭격에 무너진 집을 간신히 빠져나온 제야드 카타브(44)는 “달릴 곳도 숨을 곳도 없다”고 말했다. 공습 사이렌도 은신처도 없다. 유엔 임시대피소도 폐허가 됐다.
AP통신은 지난 10일부터 사흘째 이어진 양측의 전쟁으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 200만명이 고립됐다고 12일 보도했다. 가자지구 국경은 이스라엘의 봉쇄로 센서 달린 울타리와 콘크리트 벽, 철제장벽과 지중해로 둘러싸여 있다. 보트를 타고 도망갈 수도 없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인근 항해 허용 거리를 해안에서 3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사상자는 계속 늘고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어린이 14명을 포함해 57명이 사망하고 33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가자지구의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피 묻은 시신을 수습한 유가족은 눈물을 흘렸다. 이스라엘에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의 로켓포 공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이 7명 희생됐다. 이스라엘 중부도시 로드에서는 이날 50대 아버지와 10대 딸이 로켓포에 맞아 숨졌다. 사망자는 이스라엘에 살던 아랍인들이었다.
■‘증오의 정치’가 부른 유혈사태
이스라엘 매체들은 이번 전쟁이 2014년 2200여명의 사망자를 낸 ‘50일 전쟁’ 때와 비슷하거다 그보다 더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지난 사흘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로 발사된 로켓포만 1100발이 넘는다. 이스라엘도 전투기 수십대를 띄워 가자지구 고층 건물을 폭격했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문명연구소 연구교수는 “2014년도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 수백발의 폭탄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이번 전쟁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충격이 그때보다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전쟁이 양측 정치 지도부 간의 전쟁이었다면, 이번엔 유대인과 아랍인 민간인 간 싸움으로 비화했다. 팔레스타인 출신 인구가 3분의 1인 이스라엘 중부도시 로드에선 아랍인들의 반이스라엘 시위로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아랍계 시위대는 이스라엘 경찰에게 돌을 던지고 유대교 건물에 불을 질렀다. 시오니즘 단체들도 “아랍인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맞불 시위에 나섰다. 전날에는 아랍인 한 명이 유대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야이르 레비보 로드 시장은 “사실상 내전 상태”라고 말했다.
민간인 간 유혈사태는 ‘증오의 정치’가 부른 결과다. 이스라엘을 15년간 통치해온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연정을 위해 유대교 근본주의 정당의 아랍인 혐오 정치를 용인해왔다. 그 증오를 기반으로 가자지구에서는 대이스라엘 강경파인 하마스가 힘을 키웠다. 요르단강 서안을 장악한 온건 팔레스타인 정부 파타는 부패와 무능으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AP통신은 이번 전쟁에 대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어느 쪽도 출구전략이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중재 나선 바이든, 외줄타기 외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면전으로 번질 수도 있을 정도로 위기가 고조되자 중재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네타냐후 총리와 전화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나의 기대와 희망은 머지않아 진정되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재를 위해 하디 암르 국무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담당 부차관보를 이스라엘로 파견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하마스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해선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두둔했다.
이러한 태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외줄타기 외교를 해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난처한 처지를 반영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와 달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국가 해법’을 지지한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적극적인 팔레스타인 지지를 촉구하지만, 공화당은 이스라엘과의 동맹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국제사회도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날 비공개회의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 확전 자제를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미국의 반대로 채택하지 못했다. 각국도 이해관계나 친소관계에 따라 미묘한 견해차를 보였다. 중국, 러시아, 영국 등은 양측에 전쟁 자제를 촉구했지만, 이스라엘에 무기를 수출하는 독일은 “이스라엘의 정당방위”를 옹호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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