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깊숙이 다가온 제4차 산업혁명 속 예술
[서울&] [커버스토리] 서울문화재단, ‘장애예술과 융복합’ 주제 라운드테이블 열고
4차 산업혁명 기반 ‘융합예술 분야' 예술가·기획자 양성 발표
장애인 유튜버 “첨단기술이 장애인 소외…예술 통해 인식 개선해야”
첨단기술과 예술의 융복합 이제 대세
문화재단,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 마련
‘융합형 기획자’ ‘비대면 콘텐츠’ 지원
“유튜브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자막 기능이 제 말에 대해서는 30% 정도의 정확도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유튜브 ‘문일곰’을 운영하는 농인 유튜버 김문일씨는 지난 7일 첨단기술의 혜택에서 소외된 장애인 예술의 한 단면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이날 서울문화재단 주최로 용산구 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 ‘장애예술과 융복합-기술과 장애의 불안한 동행’에 참석했다.
현재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자막 기능을 이용하면, 유튜버가 한 말이 자동으로 텍스트화된다. 그리고 이 텍스트는 구글 검색이 가능한 형태다. 이에 따라 유튜브 자체 자막 기능을 사용한 유튜브 동영상은 검색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하지만 농인 유튜버들은 그런 혜택을 보지 못한다. 유튜버 김씨는 수어와 음성언어를 함께 구사하면서 진행한 발표에서 “조용한 곳에서 정확한 발음을 하면 자막 인식률이 70~80%까지 높아지지만, 일반 환경에서는 인식률이 낮다”고 설명했다.
이날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장애와 기술문제를 다룬 서적 <사이보그가 되다>의 공동저자인 김원영 변호사와 김초엽 소설가,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미디어 아티스트 송예슬씨 등과 함께 국내 최초 장애인 레지던시인 잠실창작스튜디오 12기 입주작가이기도 한 김씨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다양한 물리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기술 발전이 장애인 예술가에게도 해당하는가?” 하는 점을 고찰했다.
실제 이날 라운드테이블에서 송예슬 작가는 ‘보이지 않는 조각들: 기술로 빚은 사색의 예술’이라는 발표를 통해 공기·온기·소리 등을 활용한 ‘비물질 조각’들을 만들어온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모든 전시가 시각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며 시각장애인도 함께 감상할 수 있게 작품을 기획했다. 이런 송예슬 작가의 전시 또한 제4차 산업혁명 기술에 힘입어 진행할 수 있었다.
<사이보그가 되다>의 공동저자인 김원영 변호사는 휠체어를 타고, 청각장애가 있는 김초엽 작가는 보청기를 사용한다. 두 사람은 손상을 보완하는 기계장치의 사용을 가리켜 ‘사이보그적’이라고 부른다. 두 사람은 사이보그가 과학에 힘입어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는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손상을 보완하는 기계장치 사용을 가리켜 ‘사이보그적’이라고 하는 두 사람은 과학기술 발전이 장애인을 더 소외시키거나 소비 대상으로 전락시킨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김초엽 작가는 이날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 또한 예술에서 나온다”는 견해도 함께 제시했다. 버려지고 소외되면서도 장애인 예술가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제4차 기술혁명에 대한 관심을 끊을 수 없는 것은 장애인 예술가만이 아니다. 2016년 클라우스 슈바프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 회장이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한 이후 이 첨단기술이 영향을 끼친 곳은 비단 경제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장애인 예술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창의성을 자랑하는 예술 영역 전체가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과 융복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첨단 기기인 드론의 군집비행으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이런 추세가 확산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직속 제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도 문화 부문에서 제4차 산업혁명 기술과의 융복합 사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문화재단에서도 지난 2월 올해 6대 핵심사업을 발표하면서 네 번째로 ‘청소년부터 전문가까지 맞춤형 융복합 창·제작사업’에 대한 지원을 포함했다.
서울문화재단은 이를 구체화해 4월15일 4차 산업혁명 기술 기반 ‘융합예술 분야' 예술가·기획자 양성을 발표했다. 뼈대는 연말까지 기획자, 예술가, 테크니션, 청소년 등 대상별로 총 4개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4개의 맞춤형 프로그램 첫 번째는 ‘융합형 문화기획자’를 위한 단계별 맞춤형 교육과정 개설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문화재단은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창·제작활동을 하는 융합예술 분야 전문가 양성을 위해 ‘융합형 문화기획자 펠로십 프로젝트: 언폴드 엑스-에프더블유(Unfold X-FW)’를 추진할 계획이다. ‘언폴드 엑스’는 2010년부터 국내 미디어아트 예술가를 발굴하고 동시대 국제 동향을 소개해온 미디어아트 축제 ‘다빈치 크리에이티브’를 개편한 서울문화재단의 융합예술 플랫폼을 가리킨다.
이 프로젝트는 급변하는 환경에서 다양한 창·제작 활동을 하는 청년 예술인, 기획자, 예술가, 테크니션 등 융합예술 전문 기획자를 대상으로 한다.
4개의 맞춤형 프로그램 중 두 번째는 ‘청년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작업 완성도를 올리기 위한 맞춤형 지원이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확장현실(XR) 등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청년 예술인과 기획자를 위한 ‘언폴드 엑스 사피(SAPY)’가 이에 해당한다.
‘사피’는 청년 예술인의 지속가능한 창작활동을 위한 서울문화재단 공간 ‘청년예술청’(Seoul Artists’ Platform_New&Young)을 뜻하는 영문명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 ‘사물을 지혜롭게 잘 이해하는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사피엔스(Sapiens)에서 유래한 말이기도 하다. 장르 경계를 넘나드는 청년 예술인 공간에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예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지난 4월 말과 5월 초 기본과정을 진행했다.
서울문화재단이 마련한 세 번째 프로그램은 예술교육가 대상으로 하는 ‘비대면 온라인 콘텐츠 제작과 기술 교육’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발·실행하는 예술교육 현장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예술교육가(TA)를 위한 ‘교육매개자 교육 프로그램 기획·운영 기술 교육’을 오는 7월부터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인 네 번째 프로그램은 청소년을 위한 VR & AR 기술 활용 창작 워크숍이다.
글, 그림, 책, 신문, 사진 작업 등 전통적 미디어부터 영상, VR, 모바일 작업 등 뉴미디어에 이르는 청소년을 위한 ‘미디어&도구 워크숍’이 오는 29일까지 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계속된다.
서울예술교육센터는 지난 2020년 11월 청소년을 위한 미디어 특화 예술교육 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용산구 서빙고로 17에 있는 센터는 글, 그림, 책, 신문, 사진 작업 등 전통적 미디어부터 VR 등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 제작까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3월26일에는 오후 1시30분부터 센터의 공공시설동 5·6층에서 ‘청소년과 함께하는 오픈 프로그램’으로 ‘VR 드로잉 워크숍’ 등을 진행했다. ‘VR 드로잉 워크숍’은 물리적 한계가 없는 상상 공간에서 예술가와 청소년이 함께 그림을 그리는 예술 워크숍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 출신 미디어아트 작가 올리버 그림이 참여했다.
또한 5월 말까지 진행되는 ‘미디어&도구 워크숍’은 14~19살 청소년이 대상이다. 프로그램은 미디어의 본질인 ‘메시지 전달과 자기표현’에 집중할 수 있는 예술교육 워크숍을 통해 VR을 체험해보고 예술가와 함께 다양한 미디어(매체)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렇게 서울문화재단의 프로그램을 폭넓게 살펴보니, 문득 제4차 산업혁명과 함께 그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예술이 우리 가까이 깊숙이 다가왔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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