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세상에서 가장 상냥한 분들에게 폭언·성희롱이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1. 5. 1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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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 고충 귀 기울여준 '유퀴즈', 이것이 이 프로그램의 가치

[엔터미디어=정덕현]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상냥하고 친절한 분들이 아닐까.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신 114에서 20년을 근무하신 김연진 상담사 같은 분들 말이다. 물론 지금은 스마트폰 검색으로 일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하셨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 분들의 일은 빛난다. 디지털 기기 활용이 익숙하지 않으신 어르신분들에게 친절하게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연결해주고 때론 감동까지 전하시는 분들이니까.

'N주년'이라는 키워드로 특집을 마련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신 김연진 상담사 이야기는 소박하지만 너무가 큰 감동을 선사했다. 21살에 입사해 이제 20년을 일했다는 직장. 친절과 소통이 기본인 이 상담사라는 직업은 이 분의 얼굴 표정에 그대로 녹아 들어 있었다. 얼굴을 대하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응대하는 것이지만, 김연진 상담사는 시종일관 미소 짓고 있었다. 기계적인 일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는 응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 그 얼굴에서는 묻어났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신 이 분들이 겪고 있다는 고충은 유재석도, 조세호도 또 시청자들도 분통이 터질 정도로 황당한 일들이었다. 한 때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성대모사하고 희화화되기도 했던 상담사 특유의 안내 톤으로, 고객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똑같이 반복해 재차 말하는 그런 응대에 "아.. 역겨워. 톤 좀 내리고 가식적으로 그리지 마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거였다. 젊은 시절 열정에 불타는 상담사분이 이런 말에 입었을 상처가 선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화가 나도 감정을 억누르며 "네 고객님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는 상담사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럼에도 김연진 상담사는 어르신들을 응대하면서 겪었던 보람을 이야기했다. 말씀을 더듬으셔서 잘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 아주 천천히 말씀해달라며 끝까지 듣고, '마스크 살 수 있는 곳'을 알려드렸을 때 저편에서 들려오는 고객님의 울음소리와 "도움 받을 곳 없는데 도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에 큰 보람을 느꼈다는 상담사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감사하다 말해주시는 것조차 감사합니다."

하지만 "내 말 왜 따라해?", "귀 먹었어?" 같은 폭언을 하거나 성희롱 발언을 하는 상황을 겪을 때마다 직업에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저희도 사람이잖아요.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런 언어폭력 속에서도 "죄송합니다"를 말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의 아픔이 느껴졌다. 그래서 한 번 그런 고객에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해보라고 조세호가 시켰지만, 김연진 상담사는 "못하겠다"고 했다. 아마도 할 말이 너무나 많아서 할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유재석이 나섰다. 대신 해주겠다며, 조세호와 상황극으로 진상 고객의 언어폭력에 일갈을 하는 유재석의 이야기에 상담사는 속이 다 시원하다고 했다. 시청자들조차 하고픈 시원시원한 일갈을 유재석이 대리해줬다. 지금은 '긴급종료 버튼'이 있어 끊어 버리면 다른 안내음으로 연결된다고 하지만 이런 일들은 이제 근절되어야 하지 않을까.

"본인의 아내, 딸이라고 생각하셔서 욕설이나 폭언이나 성희롱은 조금 안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연진 상담사는 그 고충에 대한 이야기 속에도 상냥함과 친절함이 습관처럼 배어 있었다. 유재석은 그래서 대신 단호하게 얘기했다. "굳이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그건 당연한 겁니다. 절대 그래선 안되고.. 그건 처벌을 받아야 됩니다."

정말 감동적이었던 건 "만일 나만의 기념일을 만든다면 어떤 날을 기념하고 싶으십니까?"라는 질문에 상담사가 "오늘"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답변한 대목이었다. "조세호님과 유재석님이 제 얘기를 많이 들어주셨잖아요. 그리고 여기 스태프분들도 저희 상담사의 고충을 많이 들어주셨잖아요. 저는 항상 고객님들의 목소리만 많이 듣고 그랬는데 제 얘기를 이렇게 속 시원하게 들어주시고 경청해주시니까 너무 뜻 깊은 자리였고 감사드리고.."

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대해주고 도움을 주던 이 분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간절했을 터였다. 그 폭력들 속에서 상처를 속으로만 꾹꾹 눌러놓고 있었던 분들의 이야기. <유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의 가치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회 곳곳에서 빛나는 소금 같은 일들을 하고 계시지만 들리지 않던 그분들의 이야기나 고충을 들어주는 프로그램의 가치. 앞으로도 이런 낮은 목소리들에 귀기울여주길...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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