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물범의 고단한 삶..온종일 심해 잠수 \'멸치\' 사냥

조홍섭 2021. 5. 1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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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물범은 한 번 대양에 나가면 여러 달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심해 잠수를 계속한다.

13일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코끼리물범 암컷이 중층 원양대의 작지만 풍부한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이런 이례적인 잠수능력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코끼리물범과 비슷한 수심에서 먹이를 찾는 향고래는 소형 물고기는 거들떠보지 않고 길이 2m 무게 50㎏에 이르는 대왕오징어를 사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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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풍부한 샛비늘치 찾아 하루 22시간 500m 깊이 잠수..기후변화로 '막다른 골목'
심해에서 소형 물고기를 사냥하는 코끼리물범의 행동을 조사하기 위해 소형 비디오와 가속도계를 부착한 모습 그림. 다니엘 두브 제공.

코끼리물범은 한 번 대양에 나가면 여러 달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심해 잠수를 계속한다. 이 대형 해양 포유류가 어떻게 극한적인 잠수능력을 지니게 됐는지 오랜 수수께끼가 직접 관측을 통해 풀렸다.

아다치 타이키 일본 국립극지연구소 연구원 등 국제연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북방코끼리물범 48마리에 비디오카메라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소형 가속도계를 부착해 얻은 데이터를 분석했다. 13일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코끼리물범 암컷이 중층 원양대의 작지만 풍부한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이런 이례적인 잠수능력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수중음파 탐지기로 본 북대서양 바다 단면. 중간의 초록 띠가 중층 원양대에 분포하는 소형 물고기 떼를 가리킨다.

중층 원양대란 대양의 표층과 심층 사이로, 빛의 1%만 도달하는 깊이부터 빛이 전혀 도달하지 못하기 시작하는 곳까지인 수심 200∼1000m 구간을 가리킨다. 이곳엔 샛비늘치과의 길이 10㎝ 무게 10g 이하인 소형 물고기를 비롯해 대왕오징어, 형광 해파리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한다.

히 이 해역의 소형 물고기는 생물량이 10억t에 이르며 전 세계 물고기 총량의 9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 생물량이 많아 2차 세계대전 때는 수중음파탐지기가 이곳의 물고기떼를 종종 해저로 착각할 정도였다.

비디오카메라에 찍힌 코끼리물범은 번식을 마친 뒤 2달 동안 대양에서 먹이활동을 했는데 하루 평균 63번 잠수했다. 평균 잠수 깊이는 500m로 중층 원양대에서 주로 사냥했다. 최대 1500m까지도 내려갔다. 한 번 잠수하면 평균 20분 동안 머물며 샛비늘치 등을 25마리 정도 잡아먹었다. 코끼리물범이 잡아먹는 소형 심해어는 하루 1000∼2000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표적인 중층 원양대에 서식하는 물고기인 샛비늘치의 일종. 길이 5∼10㎝로 소형이지만 생물량이 많아 해양생태계에서 차지하는 구실이 주목받는다. 엠마 키슬링,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심해 잠수를 하는 고래는 바다표면에서 꽤 오래 쉬고 얕은 잠수를 여러 번 한 뒤 깊은 잠수에 들어간다. 그러나 코끼리물범은 잠수를 마치고 불과 몇 분 정도만 바다 표면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심해 잠수에 들어갔다.

1000m가 넘는 100분 동안의 깊은 잠수를 마치고 나서도 거의 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연구자들은 “암컷 코끼리물범이 하루에 휴식과 수면에 보내는 시간은 1시간 20분에 불과했다”며 “잠도 깊은 바닷속으로 빙빙 돌며 가라앉는 동안 잔다”고 설명했다.

털갈이를 위해 해변에 모인 북방코끼리물범. 털을 간 이들은 7개월에 걸친 장기 이동과 잠수 활동에 들어간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렇다면 왜 코끼리물범은 힘들게 깊은 바다로 잠수해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게 됐을까. 연구자들은 몸집의 크기와 확보할 수 있는 먹이의 양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코끼리물범과 비슷한 수심에서 먹이를 찾는 향고래는 소형 물고기는 거들떠보지 않고 길이 2m 무게 50㎏에 이르는 대왕오징어를 사냥한다. 향고래는 무게 50t에 이르러 350㎏인 암컷 코끼리물범보다 100배 이상 무겁다. 연구자들은 향고래가 대왕오징어를 사냥하게 된 이유를 “몸집이 크면 신진대사가 늦고 산소 저장능력이 커 더 깊은 곳으로 잠수할 수 있지만 대신 더 많이 먹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몸무게 2t인 코끼리물범 수컷(오른쪽)은 350㎏인 암컷과 마치 다른 종인 것처럼 먹이활동도 다른 곳에서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흥미롭게도 수컷 코끼리물범은 암컷과는 전혀 다른 종처럼 먹이활동을 한다. 몸무게 2t에 이르는 수컷 코끼리물범은 연안 해저에서 큰 먹이를 찾는다. 편하게 사냥하는 대신 백상아리나 범고래 같은 포식자에 맞서야 한다.

연구자들이 계산했더니 암컷 코끼리물범이 에너지 균형을 맞추려면 하루의 80∼100%를 먹이활동에 보내야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사냥에 투입해야 신진대사를 유지할 수 있는데 만약 중층 원양대의 물고기가 지금처럼 풍부하지 않게 된다면 심각한 위기에 놓일 수 있다.

코끼리물범은 생태계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이다. 연구자들은 돌고래처럼 초음파로 먹이를 찾지도 수염고래처럼 플랑크톤을 걸러 먹는 재주도 없어 심해에 잠수해 작은 물고기를 쉬지 않고 잡아먹게 됐다”며 “기후변화로 달리 대안이 없는 코끼리물범은 더욱 취약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층 원양대는 수온이 오르고 산소가 줄어 대양에서도 기후변화의 영향이 가장 큰 수역으로 밝혀지고 있다.

인용 논문: Science Advances, DOI: 10.1126/sciadv.abg362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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