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행동을 지배하는 건 이성이 아니라 냄새다"
지금 독자가 기사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코와 냄새 덕분이다. 냄새를 맡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억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 인간이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존재이며 무언가 고심해서 결론을 내린다는 믿음은 틀렸다. 인간의 일상은 냄새로 좌우된다. 인간이 선택한 배우자나 회사 직원, 믿고 의지하는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다. 논리적인 이유는 그저 ‘만들어’ 붙인 것이다.
인간의 후각적 의사소통을 연구해온 베티나 파우제 독일 뒤셀도르프대 교수의 주장은 이처럼 전복적이다. 화학분자가 코를 통해서 뇌에 도달하고 마침내 정서를 일으키는 과정을 추적한 결과, 인간은 시각적 동물이 아닌 후각적 동물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끊임없이 냄새를 내뿜고 타인의 냄새에 쉴 새 없이 반응한다. 사물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도 수집 대상이다. 그것들이 보내는 화학적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 냄새를 맡고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서 건강은 물론, 인간관계와 행복감까지 달라진다.
작동원리 살피면 황당한 주장은 아냐
코의 작동원리를 살펴보면 황당한 소리만은 아니다. 인간이 호흡하면 주변의 분자들이 코와 입을 거쳐 코 안쪽으로 들어온다. 분자들은 콧구멍 안쪽의 후각 세포들과 연결고리를 만든다. 인간과 포유동물에게는 1,000개 이상의 서로 다른 후각 수용체가 있고 이들은 저마다 하나씩 분자들을 인식한다. 사람마다 수용체 구성이 달라서 민감한 냄새도 다르다. 인간이 구분하는 냄새는 1조 개에 달한다. 시각은 겨우 500만 개의 색깔을 구분할 뿐이다. 코는 태어날 때부터 인간에게 장착된 화학물질 탐지기인 셈이다.
이 고성능 탐지기는 어떤 감각기관보다 빠르게 상황을 탐지한다. 어떤 장소에 처음 갔을 때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면 후각이 신호를 보낸 것이다. 시각과 청각이 판단을 위한 정보를 뇌에 제공하는 동안, 후각은 맹렬하게 경고음을 낸다. ‘여기 뭔가 불편해, 돌아가자’라고. 동물들이 병원 냄새를 맡고 부르르 몸을 떠는 것처럼 인간도 후각으로 먼저 주변을 탐지한다.
같은 원리로 타인의 감정도 ‘맡을 수 있다’. 파우제 교수는 두려움의 냄새를 찾아냈다. 시험을 치는 학생들의 겨드랑이에 솜을 끼워서 채취한 땀을 운동하면서 흘리는 땀과 비교한 것이다. 땀의 분비량은 차이가 없었지만 구성 성분이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감정들 역시 저마다 다른 냄새를 뿜을 것이다.
냄새로 질병 찾기가 가능한 이유
이쯤 되면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19 환자를 탐지하는 데 개를 동원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 환자들은 질병에 따라 다른 냄새를 뿜는다. 탐지견으로 폐암과 난소암 환자를 찾아내는 경우, 진단 정확도가 거의 100%에 이른다는 연구가 있다. 파우제 교수는 인간도 그런 능력을 의식하지 않을 뿐, 언제나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픈 사람이 옆에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이유다.
뇌는 후각 기관에서부터 진화해왔다. 후각을 관장하는 후각뇌가 없었다면 감정뇌가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을 관장하는 뇌 역시 등장하지 못했을 거라고 파우제 교수는 주장한다. 뇌의 활동을 관찰하면 냄새를 맡는 행위와 감정을 느끼는 행위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냄새를 맡지 못했다면 읽고 쓰고 기억하는 것은 물론,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여기서 출발했다.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후각의 의미를 공부하는 것이 어떻게 삶을 바꿀까. 그것은 잃어버렸던 가전제품을 찾아내 이리저리 만져보는 경험과 같다. 미처 몰랐던 유용한 기능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활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냄새가 ‘솔직한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표정이나 행동과 달리 냄새는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 아픔을 아픔으로,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기쁨을 기쁨으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행복을 탐지하는 본질적 기술이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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