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청 "비극, 아름다울 수 있죠"..'그을린 사랑'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비극이 우리 삶을 전율케 한다는 사실을 연출가 신유청(40)은 알려준다.
그의 대표작인 연극 '그을린 사랑'은 참혹한 비극이 종결되는 시점에서 발생하는 '미완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평범한 삶에 끼어든 비극이 극적인 것이 아니라, 비극적인 삶에 끼어든 평범함이 얼마나 극적인지를 증명한다.
신 연출은 "'그을린 사랑'은 원작이 갖고 있는 힘으로, 충분히 눈물을 뺄 수 있다"면서 "그보다 중요한 건, 삶이 슬픈 만큼 인생이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비극이 아름다울 수 있죠"라고 말했다.
신 연출에게 작년 '2020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 부문 대상격인 백상연극상을 안긴 '그을린 사랑'은 레바논 태생 캐나다 작가 겸 연출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이 바탕이다. 같은 희곡을 원작으로 한 캐나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동명영화로도 유명하다.
신 연출의 '그을린 사랑'은 2016년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연극 부문 최우수작으로서 아코르예술극장에서 초연했다. 지금까지 세 번 공연했고, 오는 25~30일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전쟁과 폭력에 마음과 몸이 찢긴 '나왈'이 주인공. 그녀의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 나왈의 과거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그들은 어머니의 삶을 통해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의 모티브와 맞닿은 자신들의 근원과 만나게 된다.
그 비극의 연쇄 고리를 '사랑의 위대함'으로 끊으려는 나왈의 숭고함은 아름답다. 신 연출은 "고통을 넘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이고 비극이에요. 그런 비극은 시간·공간을 초월해 기적을 만들어서 삶의 의미를 찾게 한다"고 전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힘이 풀릴 정도의 느낌을 받더라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었어요. 결혼식에 참석한 이후 마냥 행복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장례식에서 슬피 울고 헛헛함을 느껴도, 삶의 선명함을 볼 수 있죠. 그것이 인생의 조화이자 아름다움이고, '비극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거대한 고난 앞에서 누가 그것을 안다고 감히 우쭐댈 수 있겠어요."
삶이 비극이라 습관처럼 믿고 있지만 감히 그 비극을 완성할 기개는 갖고 있지 않은 우리들에게 그래서 '그을린 사랑'은 남다르다.
신 연출은 이 작품에서 '삶의 균형'을 봤다. "관객분들의 평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두 번은 못 보겠다'가 인상적이었어요. 무게감이 잘 표현했다는 칭찬인 건 알지만, 계속 보면서 곱씹기를 바랐어요. 와즈디 무아와드 작가는 희극과 비극의 밸런스를 놀랍게도 잘 유지하거든요."
예컨대, 엄마 나왈이 쌍둥이 남매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은 '시몽, 너 울고 있니? (…) 잔느, 너 웃고 있니?' 같은 글귀다. 신 연출은 "삶에서 희극과 비극은 함부로 분류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신 연출이 비극과 함께 탐구해온 건 혐오다. 성수자에 대한 혐오의 역사를 다룬 '와이프', 역시 동성애 혐오와 혐오로 인한 범죄에 대한 고찰한 연극 '빈센트 리버'(오는 7월11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블랙),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반동성애를 그린 국립극단의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11월26일~12월26일 명동예술극장) 등 그가 연출한 또는 연출할 작품만 봐도 알 수 있다.
신 연출은 "연극을 통한 이 시대의 혐오와 전쟁은 다름의 차이에서 오는 편견이 얼마나 적나라하고 있는지를 표현하는 것"이라면서 "잔인함과 폭력이 무대 위에서 전시돼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작가가 쓴 폭력적인 그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연출의 일"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이타적인 사랑을 배워야만, 빗금 치기에서 벗어나 우리가 사는 방식을 바꿀 수 있어요. 연극은 우리가 이기적이지 않다는 걸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걸 인정하되 덮을 수 있는 건 사랑이라는 걸 보여주죠. 그 사랑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를 연극은 보여줍니다. 나왈의 사랑처럼요."
이처럼 연극의 힘을 믿는 신 연출은 공연계 최고 블루칩으로 통한다. 대학로에 '신유청 연출밖에 없냐'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제56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그에게 안긴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비롯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언체인' '궁극의 맛' 등 순수와 상업, 공립과 민간을 나누지 않고 작업했다.
그런 신 연출은 코로나19로 인해 의도치 않게 잠시 쉬면서도 연극의 힘을 새삼 느꼈다. 코로나19가 창궐해 공연이 취소되는 가운데도 연극은 무대에 오르고 관객은 공연장을 찾았다.
"'사람은 의미를 먹고 산다'고 하잖아요. 극한에서 살아갈 목적성을 찾아 '버티는 힘'을 만들죠.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남은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실존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욕구를 다룬) '로고테라피'(Logo therapy·의미 치료)를 이야기했는데, 공연을 보시는 분들 역시 그런 의미를 찾는 게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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