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전 '똥'이 지금 '똥'보다 훌륭..장내미생물 38% 사라져

조승한 기자 2021. 5. 1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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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된 대변 화석. 미국 미생물학회 제공

지난 1000년간 인간의 장내 미생물 군집이 빠르게 변화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원후 1000년까지 살았던 인간의 분변 화석을 분석한 결과 산업화 진행과 함께 인간의 장내 미생물 중 38%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인간은 환경에 잘 적응하는 장내미생물을 가졌고, 항생제 내성 유전자도 적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알렉산다르 코스틱 미국 하버드대 의대 미생물학부 교수팀은 이 같은 내용의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12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멕시코와 미국 남서부에서 건조한 기후 덕분에 보존 상태가 우수한 고대 분변 화석 8점을 분석했다. 이들 분변은 탄소연대측정에서 기원후 0~1000년에 만들어진 것들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여기서 인간의 장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게놈 181개를 산출했다. 분변이 외부 미생물이나 동물에 의해 오염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표본 하나당 최소 1억 회 이상 DNA를 판독해 게놈 분석을 매우 정밀하게 진행했다. 그리고 이를 현대 분변에서 추출한 789개의 게놈과 비교했다.

고대 분변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섬유질 위주의 식단을 따랐다는 증거가 나왔다. 음식으로 추정되는 게놈에서 옥수수와 콩 등이 확인됐는데, 이는 과거 이곳에 거주한 사람들이 작물을 키워 주식으로 섭취했음을 시사한다. 또 미국 유타주에서 채집된 분변 화석에서는 부채선인장, 쌀풀, 메뚜기 등도 확인됐다.

특히 고대 분변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복합탄수화물을 주로 섭취할 때 나타나는 전분 대사와 관련된 유전자가 다량 발견됐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현대인의 장에서 나타나는 유전자들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분변 화석은 8점에 불과했지만, 여기서 발견된 고대 미생물 종의 38%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종으로 확인됐다. 이는 당시 고대인의 장내 미생물이 현대인보다 더욱 다양했음을 뜻한다. 

코스틱 교수는 “고대에는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가 다양했고, 이에 따라 장내에 다양한 미생물을 보유할 수 있었다”며 “산업화가 진행되고 식료품점에서 제공하는 가공 음식으로 식단이 바뀌면서 현대인의 장은 다양한 미생물 군집을 가질 수 있는 많은 영양소를 잃은 셈”이라고 말했다.

고대 인간의 분변에서 확인된 장내 미생물이 현재 인간의 장내 미생물과 매우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대 조슬린 당뇨병 연구소 제공

고대 미생물은 항생제 내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도 현대인보다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장 점액층 분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수도 적었다. 장 점액층이 부족하면 여러 질병을 일으키는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코스틱 교수는 “지난 천 년 동안 인간의 장이 수십 종의 장내미생물을 잃고 다양성이 덜해지는 ‘멸종의 시간’을 경험했다”며 “이는 우리가 돌려받지 못하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유전자가 위치를 옮길 때 필요한 전이효소인 트랜스포사제가 풍부하다는 점을 근거로 고대 미생물 군집이 지금보다 환경에 맞춰 유전자를 바꾸는 능력도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코스틱 교수는 “이는 환경 변화가 큰 고대에 미생물이 적응하는 전략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고대 장내 미생물 군집은 현재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 군집과 유사하다. 연구팀은 이전 연구에서 핀란드와 러시아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장내 미생물 군집을 조사해 산업화 지역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1형 당뇨병 등 현대 질병에 걸릴 위험이 더 큰 장내 미생물을 보유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코스틱 교수는 “산업화 영향으로 어릴 때 면역력 형성을 방해하는 특정 미생물들이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향후 새로운 미생물종을 찾고 대사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고대 미생물 군유전체를 늘리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코스틱 교수는 ”비슷한 박테리아종에 고대 게놈을 삽입해 실험실에서 고대 미생물을 부활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며 “실험실에서 고대 미생물을 배양할 수 있다면 미생물의 생리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는 고대 분변 연구에 관한 최초의 윤리 선언문도 포함됐다. 미국에서는 배설물 화석이 인간 유해로 간주되지 않아 연구윤리에 대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연구팀이 조상의 분변 연구를 위해 미국 남서부 부족들에게 연락했을 때 일부는 분변 화석이 조상과의 연결 고리라며 협의하지 않은 사실에 항의했고, 이에 따라 연구팀은 윤리 선언문을 작성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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