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직업 세계의 '노매드랜드', 그 이름은 프리랜서
2021. 5. 13. 11:03
표정훈 | 비문학 작가, 책 칼럼니스트
프리랜서의 윤리 혹은 예의가 있다면 뭘까? 프리랜서로 오래 가려면 크고 센 클라이언트가 맡긴 수백, 수천 만 원짜리 일을 할 때와, 상대적으로 세가 약한 클라이언트가 맡긴 몇 만 원, 몇 십 만 원 일을 할 때 같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받는 액수와 상관없이 정성을 들여야 오래 살아남는다. 오늘 미약한 클라이언트가 세월 좀 지나 센 클라이언트가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더구나 어느 업계든 사람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돈다.
다만 일에 들이는 시간은 아무래도 돈 많이 받는 일 쪽이 길다. 일의 순서에서도 돈 많이 받는 일을 먼저 하고 더욱 서두르게 된다. 이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리라. 이렇게 들이는 시간과 처리하는 순서는 돈 많이 받는 쪽이 우선이지만, 들이는 노력의 질적 강도, 정성만큼은 천만 원 받을 때와 백만 원 받을 때, 아니 십만 원 받을 때에도 같아야 한다. 뭐 좀 격언처럼 말하자면, '작은 일에 소홀하면서 큰일을 잘할 수는 없다.'
프리랜서의 고충 아닌 고충이 하나 있다. 프리랜서는 기본적으로 혼자 일하지만 일을 맡겨준 클라이언트 측 담당자와 전화, 이메일, 직접 대면 등으로 소통해야 한다. 또 한시적으로나마 팀을 이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경우도 아주 가끔 있다. 이럴 때 담당자 또는 한시적 파트너들을 부르는 호칭이 애매하다. 과장님, 차장님 등 직함이 있으면 그걸로 부르기도 하지만 요즘엔 그런 직함이 없거나 애매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경우 '선생님'이라 부른다. 이게 좀 묘한 게, 나보다 나이 한참 어린 담당자나 파트너들에게도 '선생님'이라 부른다는 점이다. 그럴 때 적지 않은 분들이 나에게 말한다. "그냥 말 편하게 하세요." 하지만 '말 편하게 하면' 내가 불편해진다. 공자님도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 가운데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이가 반드시 있다(三人行 必有我師)'라고 했거니와, 아무리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내가 배울 점은 꼭 있다고 생각한다.
일 때문에 만난 이에게 단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말 편하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 때문에 만난 사이지만 어떤 계기로 친해져서 사적(私的) 선후배 관계가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나는 그럴 때에도 좀처럼 말을 편하게 하지 않는다. 말 편하게, 그러니까 말을 놓거나 하는 순간부터 내가 그 분에 대해 뭔가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예컨대 술값을 내가 내야할 것 같기 때문이다. 책임과 술값은 가급적 아끼는 게 좋다.
프리랜서는 당연히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다. 예컨대 프리랜서 번역가는 번역이 전문 분야이며, 그 안에서 다시 특정 언어가 있다. 영어면 영어, 일어면 일어, 중국어면 중국어. 물론 두 가지 이상 언어에 걸쳐 활동하는 능력자도 가끔 있다. 그런데 번역가라고 해서 오로지 번역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번역과 관련 있는 다른 일도 하는 게 좋다. 번역을 중심으로 삼되, 영역을 조금 넓히고 일을 다각화하는 것이다.
내가 알고 지내는 몇몇 번역가들을 보면 이렇다. 번역에 관한 강의를 한다. 번역에 관한 글도 쓰며 책도 낸다. 출판 관련 기관이나 단체가 여는, 번역에 관한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포럼에서 토론한다. 출판사가 맡기는 번역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외국 원서를 찾아보며 '번역출판 기획자'로도 활동한다. 번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작가가 되어 자신의 저서를 낸다. 번역이라는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그 본업을 바탕으로 일의 범위를 넓히는 게 좋다.
프리랜서의 즐거움은 혼자서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리랜서의 괴로움은 혼자서 독립적으로 일하니 외롭다는 것이다. 프리랜서의 즐거움은 일하는 과정과 방법, 시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리랜서의 괴로움은 일하는 과정과 방법, 시간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언제든 무너지기 쉽다는 것이다. 요컨대 즐거움을 그대로 뒤집으면 괴로움이 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즐거움과 괴로움 사이에서 외줄 타는 스릴 또는 위험이, 프리랜서의 진짜 즐거움과 괴로움이다.
프리랜서와 직장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직장 생활을 1년 남짓 짧게 경험하고 20여 년 간 프리랜서로 활동한 내가 보기엔 이렇다. 프리랜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늘 자신의 마지막 일일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이후로 일감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사자성어로 말하면 프리랜서는 일감에 관한 한 늘 백척간두에 서 있으며, 조직의 보호가 없으니 풍찬노숙도 마다할 수 없다.
프리랜서는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가지고 모든 걸 말해야 한다. 가끔 보면 "내가 예전에 누구와 함께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데…" 장황하게 말하는 프리랜서가 있다. 소용없다. 그런 거 읊어봐야 듣는 사람들은 속으로 비웃거나 그냥 한 귀로 흘린다. 지금 하는 일을 맡겨준 클라이언트의 기대 수준에 맞게, 아니 사실은 기대 수준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야 비로소 인정받는다.
프리랜서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을까? 없지는 않다. 휴대전화에 은행통장과 주민등록증 사진 파일을 저장해 놓았으면 프리랜서일 가능성이 높다. 더하여 휴대전화 메모장에 자신의 우편주소, 주민등록번호, 은행 계좌번호 등을 저장해놓았다면 역시 프리랜서일 가능성이 크다. 일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을 때, 그러니까 수고비 받기 위해 필요한 사항들이다. 특히 '우편주소, 주민등록번호, 은행 계좌번호'는 필수 3종 세트라 하겠다.
이 '3종 세트'를 알려 달라 요청받을 때 길어도 1분 안에 보내면 그럭저럭 먹고사는 프리랜서, 3분 넘어가면 배부른 프리랜서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럭저럭 먹고살기도 어려워서인지 몰라도 30초 안에 보낸다. 판별법을 한 가지 더 말하자면, 회의 참석자 가운데 자신의 은행 계좌번호를 즉시 적는 사람은 프리랜서, 휴대전화 꺼내 찾아보고 적는 사람은 직장인일 가능성이 높다. 프리랜서는 계좌번호 적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는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가지고 모든 걸 말해야 한다. 가끔 보면 "내가 예전에 누구와 함께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데…" 장황하게 말하는 프리랜서가 있다. 소용없다. 그런 거 읊어봐야 듣는 사람들은 속으로 비웃거나 그냥 한 귀로 흘린다. 지금 하는 일을 맡겨준 클라이언트의 기대 수준에 맞게, 아니 사실은 기대 수준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야 비로소 인정받는다.
프리랜서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을까? 없지는 않다. 휴대전화에 은행통장과 주민등록증 사진 파일을 저장해 놓았으면 프리랜서일 가능성이 높다. 더하여 휴대전화 메모장에 자신의 우편주소, 주민등록번호, 은행 계좌번호 등을 저장해놓았다면 역시 프리랜서일 가능성이 크다. 일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을 때, 그러니까 수고비 받기 위해 필요한 사항들이다. 특히 '우편주소, 주민등록번호, 은행 계좌번호'는 필수 3종 세트라 하겠다.
이 '3종 세트'를 알려 달라 요청받을 때 길어도 1분 안에 보내면 그럭저럭 먹고사는 프리랜서, 3분 넘어가면 배부른 프리랜서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럭저럭 먹고살기도 어려워서인지 몰라도 30초 안에 보낸다. 판별법을 한 가지 더 말하자면, 회의 참석자 가운데 자신의 은행 계좌번호를 즉시 적는 사람은 프리랜서, 휴대전화 꺼내 찾아보고 적는 사람은 직장인일 가능성이 높다. 프리랜서는 계좌번호 적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프리랜서의 윤리 혹은 예의가 있다면 뭘까? 프리랜서로 오래 가려면 크고 센 클라이언트가 맡긴 수백, 수천 만 원짜리 일을 할 때와, 상대적으로 세가 약한 클라이언트가 맡긴 몇 만 원, 몇 십 만 원 일을 할 때 같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받는 액수와 상관없이 정성을 들여야 오래 살아남는다. 오늘 미약한 클라이언트가 세월 좀 지나 센 클라이언트가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더구나 어느 업계든 사람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돈다.
다만 일에 들이는 시간은 아무래도 돈 많이 받는 일 쪽이 길다. 일의 순서에서도 돈 많이 받는 일을 먼저 하고 더욱 서두르게 된다. 이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리라. 이렇게 들이는 시간과 처리하는 순서는 돈 많이 받는 쪽이 우선이지만, 들이는 노력의 질적 강도, 정성만큼은 천만 원 받을 때와 백만 원 받을 때, 아니 십만 원 받을 때에도 같아야 한다. 뭐 좀 격언처럼 말하자면, '작은 일에 소홀하면서 큰일을 잘할 수는 없다.'
프리랜서의 고충 아닌 고충이 하나 있다. 프리랜서는 기본적으로 혼자 일하지만 일을 맡겨준 클라이언트 측 담당자와 전화, 이메일, 직접 대면 등으로 소통해야 한다. 또 한시적으로나마 팀을 이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경우도 아주 가끔 있다. 이럴 때 담당자 또는 한시적 파트너들을 부르는 호칭이 애매하다. 과장님, 차장님 등 직함이 있으면 그걸로 부르기도 하지만 요즘엔 그런 직함이 없거나 애매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경우 '선생님'이라 부른다. 이게 좀 묘한 게, 나보다 나이 한참 어린 담당자나 파트너들에게도 '선생님'이라 부른다는 점이다. 그럴 때 적지 않은 분들이 나에게 말한다. "그냥 말 편하게 하세요." 하지만 '말 편하게 하면' 내가 불편해진다. 공자님도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 가운데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이가 반드시 있다(三人行 必有我師)'라고 했거니와, 아무리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내가 배울 점은 꼭 있다고 생각한다.
일 때문에 만난 이에게 단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말 편하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 때문에 만난 사이지만 어떤 계기로 친해져서 사적(私的) 선후배 관계가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나는 그럴 때에도 좀처럼 말을 편하게 하지 않는다. 말 편하게, 그러니까 말을 놓거나 하는 순간부터 내가 그 분에 대해 뭔가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예컨대 술값을 내가 내야할 것 같기 때문이다. 책임과 술값은 가급적 아끼는 게 좋다.
프리랜서는 당연히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다. 예컨대 프리랜서 번역가는 번역이 전문 분야이며, 그 안에서 다시 특정 언어가 있다. 영어면 영어, 일어면 일어, 중국어면 중국어. 물론 두 가지 이상 언어에 걸쳐 활동하는 능력자도 가끔 있다. 그런데 번역가라고 해서 오로지 번역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번역과 관련 있는 다른 일도 하는 게 좋다. 번역을 중심으로 삼되, 영역을 조금 넓히고 일을 다각화하는 것이다.
내가 알고 지내는 몇몇 번역가들을 보면 이렇다. 번역에 관한 강의를 한다. 번역에 관한 글도 쓰며 책도 낸다. 출판 관련 기관이나 단체가 여는, 번역에 관한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포럼에서 토론한다. 출판사가 맡기는 번역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외국 원서를 찾아보며 '번역출판 기획자'로도 활동한다. 번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작가가 되어 자신의 저서를 낸다. 번역이라는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그 본업을 바탕으로 일의 범위를 넓히는 게 좋다.
프리랜서의 즐거움은 혼자서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리랜서의 괴로움은 혼자서 독립적으로 일하니 외롭다는 것이다. 프리랜서의 즐거움은 일하는 과정과 방법, 시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리랜서의 괴로움은 일하는 과정과 방법, 시간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언제든 무너지기 쉽다는 것이다. 요컨대 즐거움을 그대로 뒤집으면 괴로움이 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즐거움과 괴로움 사이에서 외줄 타는 스릴 또는 위험이, 프리랜서의 진짜 즐거움과 괴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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