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에서 꽃피운 예술 열정 '조병화'·소설로 앙금 되갚은 '이병주'

양은하 기자 2021. 5.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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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탄생 100주년 문학인 읽기
대산문화재단, 13~14일 기념문학제
시인 조병화(1921~2003)가 그린 '명동 다방 지도'. 당시 자주 가던 곳이라고 표시된 곳을 보면 다방으로 보이는 '낭만', '모나리자', '돌체', '포엠'(Poem)' 등이 보인다.(국립현대미술관)© 뉴스1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20세기 명동의 다방은 예술이 꽃피던 요람 같은 곳이었다. 시인, 소설가, 화가 등 예술인들은 명동에 줄줄이 들어선 다방을 아지트 삼아 술과 커피를 마시며 영감을 주고받고 예술에 대한 열정을 채웠다.

1921년생으로 올해 탄생 100주년 문인인 시인 조병화도 그 중 한 명이다. 당시 서울고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거의 매일 퇴근과 동시에 다방으로 출근해 통금시간까지 예술가들과 술로 밤을 보냈다. 자주 다니던 다방을 표시한 지도('명동 다방 지도')도 그렸다.

다방은 물리·화학을 전공한 과학도를 시인의 길로 나서게 했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서울과 인천의 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쳤던 조병화는 통근 시간을 아끼려고 서울고등학교 도서관에서 1년을 지냈는데 이때부터 다방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그의 장남 조진형(조병화문학관 관장)은 계간 '대산문화' 2021년 여름호에 기고한 글에서 "(아버지가) 이 기간에 문학책도 많이 읽으시고 매일 저녁 명동에 나가 많은 예술인들과 어울리시면서 시인의 길로 나서게 되셨다"고 회고했다. 그 시절 명동의 다방을 두고 '개방종합대학'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어떤 공간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명동 거리를 걷는 시인 조병화(가운데)와 화가 천경자(오른쪽), 소설가 이봉구. 1956년 촬영 당시 이들은 각각 35세, 32세, 40세였다. (국립현대미술관)© 뉴스1

재밌는 것은 불과 1966년에 그가 명동에 대해 낭만이 사라지고 돈만 남았다고 개탄한 것이다. 그는 소설가 이봉구에게 보낸 옆서에서 "우리들의 명동 대 서사시('그리운 이름 따라')를 잘 받았다"며 "지금은 명동의 '청춘', '낭만', '유정유한'도 사라지고 '돈'만 남은 명동"이라고 아쉬워했다.

조병화가 다방을 사랑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어 보인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인 아내 덕으로 넉넉히 산다는 오해를 자주 받았는데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한번은 김수영 시인이 "병화, 너는 네 마누라가 의사라서 맥주를 마시고 나는 돈이 없어 소주를 마신다"라고 하자 그에게 맥주를 끼얹으며 "그렇게 부러우면, 네가 데리고 살아라"하고 자리를 떴다는 일화도 있다. 그의 아들은 "밖에서 예술인들하고 시간을 보내시는 아버님과 어머님은 자주 다툼이 있었고, 이러한 갈등이 아버님을 더욱더 고독하게 만들고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시게 만든 동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시인 조병화(왼쪽)와 소설가 이병주(대산문화재단)© 뉴스1© 뉴스1

같은 해에 태어난 소설가 이병주(1921~1992년)는 데뷔작 '소설, 알렉산드리아'(1965년)로 유명하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배경으로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한 국적의 인물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설정뿐 아니라 서사도 색달라 지금 읽어도 세련됐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이 이국적인 소설의 집필 배경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원망과 앙금이 깔려있다. 부산에서 국제신문 주필 겸 편집국장을 하던 이병주는 한때 박정희와 절친한 술친구였다. 1961년 박정희가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이를 비판하는 논설을 썼고 이 때문에 10년형을 선고받고 2년7개월 복역했다.

강진호 문학평론가는 이병주가 출소 직후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발표하며 "글로 복수했다"고 했다. "검열이 엄격한 시기여서 배경을 알렉산드리아로 정하고 히틀러에 저항한 피해자 유족을 등장시켜서 히틀러의 행동대원을 살해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작품을 썼다"는 것이다.

이병주는 박정희가 사망하자 그의 정권 18년을 실록처럼 기록한 대하 장편소설 '그해 5월'(1982년)과 '그를 버린 여인'(1990년) 등을 통해 더 적나라하게 그의 독재를 비판했다. 강 평론가는 "작가로서 당한 것을 작가로서 풀었다"며 "우리 문학사에서는 특이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생전 80여 권의 방대한 작품을 쓴 이병주는 그간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고 최근에야 문단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한편 조병화 이병주를 비롯해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인 8명을 기리는 기념문학제가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 주최로 13일부터 이틀간 열린다. 심포지엄은 세종로 교보빌딩 컨벤션홀에서, 문학의 밤 행사는 전태일기념관에서 진행된다.

yeh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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