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타저 맞이한 ML, 공인구와 S존 그리고 '?'[슬로우볼]

안형준 2021. 5.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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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안형준 기자]

메이저리그는 최근 몇 년간 '홈런의 시대'를 보냈다. 홈런이 급증하며 스테로이드가 만연했던 2000년대 초반보다도 많은 홈런들이 터져나왔다. 이 흐름에 대해 누군가는 타격 기술의 발전이 원인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공인구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원인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메이저리그가 홈런의 시대를 겪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하지만 올시즌 초반 메이저리그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이후 처음으로 투고타저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리그 전체 평균자책점(4.05)은 투고타저 흐름의 시작이었던 2010년(4.08) 보다 낮다. 최근 5시즌 중 3시즌에서 리그 평균자책점이 4.36 이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낮아진 수치다. 타격 수치도 변했다. 올시즌 리그 전체 OPS는 0.703. 이는 클레이튼 커쇼가 사이영상과 MVP를 동시에 수상한 2014년(0.700)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21세기 들어 올시즌보다 리그 OPS가 낮았던 시즌은 2014년 뿐이었다. 리그 타율 0.234는 21세기 최저 기록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행 중인 메이저리그에서는 개막 한 달 만에 벌써 노히터가 4차례나 나왔다. 물론 4차례 노히터가 나온 시즌이 드문 것은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벌써 300회 이상 노히터가 나왔고 2015년에는 개인 노히터만 7차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5월 중순이 지나기도 전에 노히터가 4회나 쏟아져 나온 것은 191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사례를 찾을 수 있는 일이다.

필립 험버가 퍼펙트 게임, 알렉 밀스가 노히터를 달성했듯 노히터는 특급 스타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분명 대기록이지만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들. 어떤 투수든 그날의 컨디션과 운에 따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다. 올시즌도 마찬가지다. 현재까지 노히터를 달성한 4명의 투수를 살펴보면 모두 확실한 에이스라 불리기엔 무리가 있는 커리어를 갖고 있다.

조 머스그로브(SD), 카를로스 로돈(CWS), 존 민스(BAL), 웨이드 마일리(CIN) 넷 다 마찬가지다. 로돈, 머스그로브, 마일리는 올시즌 이전까지 통산 평균자책점이 4점대인 평범한 투수들이었고 민스는 간신히 3점대에 발을 걸친 통산 평균자책점 3.97의 투수였다. 하지만 올시즌 민스는 7경기 평균자책점 1.37, 로돈은 5경기 5승 평균자책점 0.58, 마일리는 6경기 평균자책점 2.00, 머스그로브는 3경기 평균자책점 3.00으로 커리어 기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히터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눈을 비비고 다시 볼만큼 뛰어난 성적을 기록 중인 투수들도 많다. 7경기 평균자책점 1.73을 기록 중인 브랜든 우드러프(MIL, 통산 ERA 3.41), 7경기 평균자책점 1.94의 맷 보이드(DET, 통산 ERA 1.94), 8경기 평균자책점 2.28의 카일 깁슨(TEX, 통산 ERA 4.48), 7경기 평균자책점 2.80의 딜런 시즈(CWS, 통산 ERA 4.54) 등도 상당히 뛰어난 시즌 초반을 보내고 있다. 투타겸업의 오타니 쇼헤이(LAA, 5G ERA 2.10)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호성적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메이저리그는 올시즌 반발력을 낮추고 무게를 줄이는 등 공인구에 변화를 줬다. 반발력이 낮아진 것은 투수에게 유리한 요인. '홈런의 시대'에 공인구가 지나치게 '잘 나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는 점을 돌아보면 투수들의 성적 향상은 공의 변화가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올시즌 유독 볼판정이 후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심판들이 스트라이크 존을 예년보다 넓게 보고 있다는 것.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지면 당연히 투수에게 유리하다.

반발력이 낮아진 공인구와 넓어진 스트라이크 존, 두 가지만으로도 투수들의 성적이 향상될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 외에도 다른 요인들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최근 상당한 이슈인 파인타르도 그 중 하나다. '소나무과 식물의 뿌리 또는 줄기를 건류해서 얻는 점조성 물질'인 파인타르는 투수가 공을 더 위력적으로 던질 수 있게 해주는 물질이자 규정으로 금지하고 있는 이물질이다.

끈적임이 있는 파인타르를 손에 바르면 투수들은 미끄러지지 않게 공을 컨트롤할 수 있고 손과 공의 마찰을 증가시켜 공에 더 많은 회전을 줄 수 있다. 회전 수가 큰 패스트볼은 그렇지 못한 패스트볼에 비해 중력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고 그만큼 위력이 강해진다. 트레버 바우어(LAD)의 주장, 전 에인절스 클럽하우스 매니저의 폭로 등으로 크게 이슈가 되기도 한 파인타르는 투수가 손에 바를 경우 비약적인 회전수 증가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바우어의 주장에 따르면 패스트볼 회전수가 200rpm 정도는 손쉽게 증가한다.

피나는 노력을 통해 패스트볼 회전수를 증가시키는 투수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인 만큼 회전수 증가가 반드시 부정행위의 증거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올시즌 갑자기 성적이 오른 투수들 중 1-2년 사이에 급격히 회전수가 증가한 선수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몇 년 전 휴스턴 애스트로스 투수들이 파인타르를 사용한다고 '저격'했던 바우어가 최근 2년 사이에 무려 패스트볼 회전수를 400rpm이나 증가시켰다는 사실은 큰 아이러니다. 바우어는 2019년 패스트볼 평균 회전수가 2,410rpm이었지만 올시즌에는 무려 2,831rpm이다.

리그를 지배하는 에이스로 갑작스럽게 떠오른 민스는 의심의 눈초리를 가장 많이 받는 투수 중 하나다. 2018시즌 패스트볼 평균 회전 수가 2,166rpm에 그쳤던 민스는 2019년 2,376rpm으로 급격히 회전수가 증가했고 2020-2021시즌에는 2,400rpm 이상을 기록 중이다. 무엇보다 민스는 투구 전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글러브 안쪽을 쓰다듬는 습관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글러브 안쪽은 투수들이 파인타르를 발라놓는 대표적인 위치 중 하나. 글러브 안쪽을 쓰다듬는 민스의 손가락이 글러브에서 끈적하게 떨어지는 듯한 영상이 SNS에서 퍼지며 민스의 글러브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물론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민스 뿐만이 아니다. 올시즌 첫 노히터의 주인공인 머스그로브, 투타겸업 신드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는 오타니, 밀워키의 에이스로 거듭난 우드러프, 시즈, 타일러 말레(CIN), 부활의 신호탄을 쏜 매디슨 범가너(ARI)까지 최근 1-2년 사이 회전수가 급증하며 올시즌 호성적을 거두고 있는 투수들이 많다. 물론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메이저리그는 올시즌 파인타르 등 부정행위를 엄중하게 적발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아직 올시즌 공식적으로 파인타르 문제를 지적받은 투수는 없다. 파인타르 문제를 상대팀이 지적한 경우도 없다. 홈런의 시대를 지나며 만연해진 투수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리그 차원에서 움직이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현장에서 '모두가 쓰는 만큼 서로 쉬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일 수도 이다. 물론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한편 회전수를 늘리기 위해 모두가 혈안인 가운데 매년 회전수가 줄어들면서도 에이스로 군림하는 투수도 있다. 2019년까지 2,000rpm을 조금 넘던 패스트볼 회전수가 지난해 1,996rpm으로 떨어졌고 올해는 1,931rpm까지 떨어졌지만 이 투수가 리그 정상급 에이스라는 점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바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류현진이다.(자료사진=존 민스)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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