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리 컸니, 태극낭자 넘보는 태국낭자

민학수 기자 2021. 5. 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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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美LPGA대회서 톱3 싹쓸이.. 태국 골프 대모가 전한 3대 비결
9일 태국에서 열린 혼다 LPGA 타일랜드 우승자 에리야 쭈타누깐이 트로피를 들고 있다./AP 연합뉴스

“이런 날이 오다니~. 우리 선수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앞으로 태국 골프 발전의 거대한 전환점이 될 것 같아요.”

‘태국 골프의 대모’로 불리는 래 바데 수완 태국여자골프협회 및 태국여자프로골프협회 고문은 지난 9일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태국의 박세리’로 불리는 에리야 쭈타누깐(26)이 우승, 세계 최연소 프로 대회 우승 기록(14세)을 가진 아타야 티티쿨(18)이 준우승, 300야드 넘는 어마어마한 장타를 날리는 ‘여자 디섐보’ 패티 타와타나낏(22)이 공동 3위를 한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럽다고 했다. 한국 골프와 오랜 교분을 지닌 래 고문은 아시아의 대표적 아마추어 여자 골프대회인 퀸시리키트컵(태국 여왕의 이름을 따 1979년 출범)의 창설에 큰 역할을 한 태국 골프의 산 증인이다.

그는 12일 본지 이메일 인터뷰에서 “쭈타누깐의 이번 대회 우승이 코로나 이후 주춤한 태국 골프 산업에 긍정적인 모멘텀을 줄 것 같다”고 했다. 2006년 창설된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올해 에리야 쭈타누깐이 태국 선수로선 처음 우승했다. 그동안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한국 선수들에게 막혔다. 쭈타누깐은 올해 이 대회 우승 후 “정말 오래 기다렸다.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감격했다. 그는 태국 선수 첫 미 LPGA투어 우승, 메이저 대회 우승, 세계 1위 등극 등 태국 골프 역사를 새로 썼다. 언니 모리야와 함께한 골프 인생을 소재로 한 전기 영화가 만들어지고, 각종 광고에 얼굴을 내미는 등 태국 소녀들의 ‘롤 모델’이 됐다. 한국에 ‘박세리 키즈'가 있는 것처럼 태국에는 ‘쭈타누깐 키즈'가 있다. 2017년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타일랜드 챔피언십에서 전 세계 주요 프로대회 역대 최연소(14세 4개월 19일)로 우승한 티티쿨이 대표적이다.

이에 앞서 쭈타누깐 자매를 비롯한 많은 태국 소년 소녀에게 골프의 꿈을 심어준 존재가 있다. 바로 태국인 어머니를 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6·미국)다. 태국인 피가 흐르는 수퍼스타 우즈를 향한 태국인들의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즈가 태국에서 친선 경기를 하면 인산인해를 이루며, 휴가를 와도 국빈급 대우를 받는다. 전성기 우즈처럼 장타를 휘두르는 타와타나낏은 “어려서 우즈가 우승하는 TV 장면을 보고 골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 태국 여자 골프의 약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박세리 성공 모델’과 판박이 같다. 삼성이 박세리를 체계적으로 후원한 것처럼 태국엔 맥주 브랜드로 유명한 싱하그룹이 있다. 싱하그룹은 1999년부터 태국의 아마추어부터 프로 골프 대회까지 거의 모든 골프 리그를 후원하고 유망주들을 지원한다. 래 고문은 “싱하그룹의 골프 지원은 3대(代)에 걸쳐 50년이 넘는다”고 했다. 싱하그룹의 전폭적 지원 속에 연간 수십 명의 주니어 골퍼가 그룹 소유 골프장 등에서 부담 없이 기량을 닦았고, 유망주들은 국제 대회에 참가하거나 조기 유학을 떠났다. 쭈타누깐과 타와타나낏은 방학 때면 미국 주니어 대회에 꾸준히 참가해 각종 우승컵을 휩쓸며 각각 미국 주니어 골프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LPGA 투어를 겨냥해 미국 대회 경험을 쌓고 영어 구사 능력을 키우는 맞춤 훈련을 한 것이다. 타와타나낏은 UCLA 골프부에서 활약하다 프로로 전향했다.

‘헌신과 극성'의 양면을 지닌 한국의 ‘골프 대디’처럼 태국의 골프 대디도 만만치 않다. 쭈타누깐의 아버지는 자매를 공동묘지로 데려가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단 채 50바퀴씩 달리게 하고, 벙커에서 혼절할 정도로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현재 미 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태국 선수는 10명 안팎이며,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2000년대 초반 LPGA 투어에서 ’한국의 침공'이란 말이 유행했는데 이젠 ’태국의 침공'이란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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