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불편한 진실] 혁신학교 괴담을 떨쳐내려면
[경향신문]
2018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강남형 혁신학교’를 제안한 적이 있다. 옆에 있던 보좌진이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혁신학교의 전통을 오염시킬 위험한 발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해 겨울부터 서울 강남3구를 중심으로 혁신학교를 반대하는 학부모들의 시위가 잇달았고, 혁신학교 지정이 연이어 무산되었다. 무엇보다 혁신학교에 대한 괴담성 흑색선전이 광범위하게 퍼져버렸다.
우선 팩트체크를 해보자. 혁신학교가 학력이 낮다는 말은 맞다. 혁신학교의 평균 학력은 일반학교의 평균 학력보다 낮게 나타난다.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에 혜택을 준다는 취지로 혁신학교를 많이 지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학력이 저하된다는 말은 틀렸다. 학력이 ‘저하’된다고 표현하려면 공시적 데이터가 아니라 통시적 데이터, 예컨대 혁신학교로 지정되기 이전보다 이후의 학력이 떨어졌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그런 연구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증 연구들은 하나같이 학력저하론을 부정한다.
<혁신학교가 학업성취도에 미치는 영향>(2019)은 3개년 동안 혁신학교 재학생을 추적 조사했을 때 학력 향상도가 일반학교 재학생과 동등하거나(초등학생) 약간 더 높게(중학생) 나타남을 보여준다. <혁신학교 성과 분석>(2018)은 지역 특성이 서로 유사한 혁신학교와 일반학교를 3년·7년간 비교했을 때 혁신학교의 학력 향상도가 더 크게 나타남을 보여준다. 아울러 혁신학교를 1년 이상 경험한 학생은 그러지 않은 학생에 비해 상급학교에서 학력 향상도가 더 크게 나타남을 보여준다. <서울형 혁신학교의 종단적 효과 분석>(2016)은 중3 학생이 자율고에 진학했을 때보다 혁신고에 진학했을 때 2년 뒤 학력 향상도가 더 크게 나타남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 결과들에도 불구하고 왜 교육부와 교육청은 혁신학교 학력 괴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까? 첫째로 낙인효과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혁신학교의 학력이 낮은 것은 소득이 낮은 지역에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해명한다면 혁신학교 구성원들은 자괴감과 굴욕감을 느낄 수 있다. 둘째로 교육의 가치를 대입과 연관시키는 것을 금기시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수능을 ‘암기 위주 시험’으로 낙인찍어온 관행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활발한 탐구활동과 토론과 독서를 통해 다양한 역량을 키우는 것이 향후 고등학교 시절 수능을 준비하는 데에도 유리한 토대가 될 터인데, 이런 발언을 해줄 스피커가 전혀 없다. 셋째로 전통적인 학력(학업성취도)을 부정하고 새로운 학력 또는 역량을 추구한다는 명분 때문이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와 같은 전통적인 학력 데이터를 통해 교육의 성과를 측정하는 데 근본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괴담에 대응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초등 6학년용이 박근혜 정부에 의해 폐지되었고, 중3·고2용은 문재인 정부에 의해 전수평가(일제고사)에서 표집평가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점점 괴담을 반박할 데이터를 구하기조차 어려워질 것이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혁신학교 괴담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혁신학교의 배경 또는 전제가 되었던 여러 요소들을 부분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우선 기초학력의 정의에 대하여 합의하고, 이를 측정할 안정적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교사가 특정 학생을 지정하여 방과후 보충교육에 참여토록 하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고, 개인별 맞춤형 온라인 과제 시스템을 제공하는 등 기초학력 보장을 위한 교사의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적어도 초등학교와 중학교로 한정한다면 혁신학교에서 길러진 역량이 장차 수능을 준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여기에 더하여 영어교육을 세계시민교육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하고 영어 노출시간을 늘리기 위해 인공지능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 강남형 혁신학교 아이디어의 골자였다.
혁신학교에 대한 반감은 이른바 ‘내로남불’ 논란, 학종에 대한 혐오 등과 뒤엉켜 있기 때문에 이를 단기간에 불식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학력저하론은 정면으로 마주하고 극복해야 한다. 기초학력은 보편복지와 민주시민교육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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