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손녀[이은화의 미술시간]〈162〉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유명 예술가나 수집가의 죽음은 미술시장을 들썩이게 한다.
1973년 파블로 피카소가 유언 없이 사망하자, 손녀 마리나는 1만 점이 넘는 작품을 포함해 유산의 5분의 1을 상속받았다.
입체파 창시자 피카소는 수많은 뮤즈를 두었지만, 결혼은 딱 두 번 했다.
아무리 위대한 예술가 피카소의 걸작이라 해도 손녀에겐 불행한 가정사의 증거품일 뿐.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입체파 창시자 피카소는 수많은 뮤즈를 두었지만, 결혼은 딱 두 번 했다. 첫 부인은 러시아 발레리나 올가 호흘로바. 마리나의 할머니다. 피카소는 뮤즈가 바뀔 때마다 화풍도 바꾸곤 했는데, 화려한 외모의 올가는 입체파 양식을 버리고 고전주의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결혼하던 해 그린 이 그림 속엔 검은 드레스의 올가가 부채를 들고 꽃무늬 장식 안락의자에 앉아 있다. 텅 빈 배경은 섬세하게 표현된 인물과 대조적이다. 분명 미완성이지만 피카소는 이것을 완성작이라 여기며 전시했다. 3년간 뜨거운 신혼을 보낸 후 올가는 파울로를 낳는다. 피카소 나이 마흔에 얻은 첫 아들이자 마리나의 아버지다. 하지만 얼마 후 피카소는 17세 소녀와 바람이 나 가족을 버렸다. 부자였지만 양육의 책임도 다하지 않았다. 올가의 자손들은 가난 속에 비참하게 살았다. 우울증으로 알코올의존증에 빠졌던 파울로는 마리나가 세 살 때 이혼하고 가족을 떠났고, 마리나의 오빠는 할아버지 장례식 참석을 거부당하자 비관 자살했다. 아무리 위대한 예술가 피카소의 걸작이라 해도 손녀에겐 불행한 가정사의 증거품일 뿐. 미련 없이 정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언젠가 버려질 운명에 대한 슬픈 예감 때문일까. 그림 속 올가의 표정이 어둡고 우울해 보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한테 버림받았지만, 마리나는 입양한 세 명을 포함해 다섯 자녀를 정성껏 키웠으며, 유산의 상당 부분을 불우 아이들을 돕는 자선활동에 쓰고 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 김치’ 명칭 쓰기 어려워진다…식품업계 속앓이
- [단독]대통령 영부인 칭찬받고도 정부사업 배제된 사연은?
- 美소비자물가 상승률, 13년 만에 최고치… 원자재 가격도 폭등
- 이란-팔레스타인, ‘50일 전쟁’ 재연 우려 커져
- [김순덕 칼럼]文 땡큐! 정권의 끝이 보인다
- [사설]한미 정상회담 전날 삼성 호출한 美, 정부-기업 원팀 되라
- [사설]공정위 기업집단국 상설화, 시대착오적 재계 군기 잡기
- [사설]기소된 이성윤, 자진 사퇴 안 하면 직무에서 배제해야
- 이해찬계-노무현 사위…이재명 대선진용, 친문-친노계 참여
- 트럼프 탄핵 찬성했던 리즈 체니, 공화당 의장직 박탈 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