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영·독·불 좌파 정당의 몰락

손진석 파리 특파원 2021. 5. 13.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 프랑스의 유일한 좌파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올랑드. 지지율이 4%까지 떨어지자 재선 도전을 포기했다. /AFP 연합뉴스

지난주 영국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이 대패(大敗)했다. 당선된 지방의원 숫자가 보수당 2345명, 노동당 1345명이다. 예견된 결과다. 노동당은 정권을 내준 2010년 이후 네 번의 총선에서 패전만 거듭했다. 영국 노동당뿐 아니라 독일 사민당, 프랑스 사회당까지 유럽 3대국의 대표적 좌파 정당이 공히 암흑기에 빠져 있다. 저마다 이유가 있다.

먼저 영국 노동당은 극좌 노선으로 돌진해 외면받고 있다. 2010년부터 5년간 당 대표였던 에드 밀리밴드는 노동당 집권 철학이었던 ‘제3의 길’을 친자본적이라며 비난했다. 대신 그는 부유층 증세, 최저임금 대폭 인상, 에너지 요금 동결을 내세웠다. 스스로 ‘정통 좌파’로 자부했지만 유권자들은 ‘강경 좌파’로 보고 불안해했다.

뒤를 이어 2015년부터 5년간 당을 이끈 제러미 코빈은 한술 더 떴다. 철도·우편·수도 등 공공 서비스 기업을 모두 국유화하겠다는 급진적 사회주의를 지향했다. 보수당이 브렉시트(EU 탈퇴)로 혼란을 일으켰지만 영국인들은 노동당에 정권을 주지 않는다.

독일 사민당은 시대 변화를 못 읽어 뒤처졌다.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사민당 지지율은 14%로서 우파인 기민·기사당 연합(23%)과 신흥 좌파 녹색당(26%)에 한참 밀린 3위였다. 전후(戰後)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게르하르트 슈뢰더까지 총리 셋을 배출한 자부심은 온데간데없다.

사민당은 사회보장 제도 확립과 노동자 권익 신장을 주도해 역사에 획을 그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사회 복지 제도가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노조의 사회적 영향력이 줄어들자 좌표를 잃었다. 변화에 적응 못하고 헤매는 사이 친환경 이슈로 치고 나온 녹색당에 좌파의 구심점을 빼앗겼다. 그러니 메르켈이라는 걸출한 리더가 이끄는 우파에 대적하지 못한다.

프랑스 사회당은 무능한 좌파의 대명사다. 1995년 미테랑 퇴임 이후 사회당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이는 프랑수아 올랑드뿐이다. 2012년부터 5년간 재임한 올랑드는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해결 못해 질타를 받았다. 그는 지지율이 4%까지 떨어지자 아예 재선 도전을 포기했다. 대신해서 2017년 대선에 나선 사회당 후보는 득표율 6.4%에 그쳤다. 여당 대선 후보가 5위에 그치는 수모였다. 내년 프랑스 대선은 중도우파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의 재대결 구도다. 사회당은 후보조차 뚜렷하지 않다.

지금 한국의 좌파 여당은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 프랑스 사회당이 실패한 이유를 죄다 갖고 있다. 그래도 권력을 쥐고 있는 건 직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코로나 사태 초기 국면에서 총선을 치렀다는 이례적인 두 가지 상황을 등에 업은 덕분이 크다. 억세게 운이 좋아도 복권에 세 번 당첨될 수는 없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