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송유관 사이버공격에 패닉… 밤11시에도 주유하러 차량 늘어서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2021. 5. 1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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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워싱턴 리얼타임]
동유럽·러 기반 범죄조직이 해킹, 동부지역 각주에서 주유난 발생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지난 11일 밤 11시 40분(현지 시각) 미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주유소. 자정이 다 된 늦은 시각이었지만 차에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자신의 이름을 ‘메릴린’이라고 밝힌 여성은 “저녁 뉴스를 보고 남편과 함께 집에 있는 두 대의 차량을 모두 끌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름 값이 오르고 있고 기름이 동날지도 모른다고 하잖아요? 그래도 이 밤중에 다들 나와서 주유를 하다니 정말 정상이 아니에요(crazy)”라고 했다.

‘어둠의 세력이 주도한 해킹 공격에 에너지망이 무너지고 주유소 앞에는 기름을 넣으려는 차들이 길게 늘어선다.’ 공상 과학 영화에 나왔을 법한 이런 시나리오가 미국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동유럽·러시아에 기반을 둔 사이버 범죄 조직 ‘다크사이드’가 지난 7일 미 동부의 대형 송유관 업체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에 랜섬웨어 공격을 가해 시설 운영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텍사스부터 뉴욕까지 8850㎞에 이르는 이 회사의 송유관은 동부 10주를 가로지르며 미 동부 전체 석유 공급의 45%를 책임지고 있다. 자가 운전이 기본인 미국에서 이 혈관이 막힌 지 나흘이 지나자 동부 각 주에서 ‘주유 대란'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선 주유 대기 차량들 - 지난 11일(현지 시각)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한 코스트코 매장 주유소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송유관 업체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사이버 범죄 조직 ‘다크사이드’의 랜섬웨어 공격으로 운영이 중단되자 미 동부 여러 주에서 이런 ‘주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송유관은 미 남부 텍사스부터 북동부 뉴욕까지 이어지며 전체 길이가 8850㎞에 달한다. /AP 연합뉴스

콜로니얼 파이프라인 측은 늦어도 이번 주말까지는 송유관 운영을 정상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코로나를 겪으면서 휴지 등 생필품을 많이 사두는 습관이 생긴 미국인들의 ‘패닉 바잉’을 막지는 못했다. 플로리다주 탤러해시에 사는 엘리샤 디바인은 이날 오전 주유소 다섯 곳을 전전한 끝에 겨우 재고가 남아있는 곳을 찾았지만, 이미 수많은 차들이 주변 도로를 빙빙 돌아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고 전했다. 주유소 직원은 “주유를 하려면 줄 끝을 찾아야 한다. 난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유를 하려는 줄이 고속도로까지 이어지고, 석유통을 들고 나와 유류를 담아가는 사람들도 목격됐다.

주유소 안내 앱 ‘가스버디’의 유류 분석가 패트릭 더한은 이날 밤 11시 기준으로 노스 캐롤라이나주 전체 주유소의 16%, 조지아주 10.4%, 버지니아주 10.2%, 사우스캐롤라이나주 8.3%의 기름이 동났다고 밝혔다. 플로리다(3.4%), 메릴랜드(1.6%), 앨라배마(1.1%), 테네시(1.0%) 등 다른 주에서도 이런 주유소가 늘고 있다.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코로나 대유행 초기에 휴지를 사들였던 것이 결국 필요 없는 일이었던 것처럼 연료를 쟁여 둘 이유가 없다”며 ‘패닉 바잉’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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