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장애와 공부
[경향신문]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나도 몇 년 전 강당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은 어머니들의 사진을 먼저 보았다. 2017년, 장애인 특수학교 건립을 두고 열린 주민공청회에서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건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이었다. 그 앞에서 “쇼하지 마” “당신이 알아서 해” “장애인 다 싫어하잖아” “나가” 등 폭언과 모욕이 남발됐던 처참한 현장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4년여 동안 무산과 투쟁을 반복한 끝에 2020년 3월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특수학교 서진학교가 개교했고, 이 지난한 과정은 다큐멘터리로 담겼다. 지난 5일 개봉한 김정인 감독의 <학교 가는 길> 이야기다.
<학교 가는 길>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던 대목은 1990년대 초반 노태우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으로부터 시작된 가양동의 지역사를 다룬 부분이었다. 영구임대 아파트가 대거 건설되면서 가양동 일대는 전국에서 장애인, 탈북자,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 되었다. 1992년 설립된 공진초등학교는 급기야 일부 주민들의 자녀 입학 거부로 인해 폐교되고 말았다. 한 지역구 국회의원이 애초에 용도 변경이 불가능한 그 교육부지에 한방병원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하자 앙금이 쌓여온 주민들의 입장이 더 갈라졌고,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이다. 2017년 공청회의 밑바탕에는 무리한 주택 정책과 정치 공약으로 인한 격리의 역사, 30년 가까이 누적된 주민들의 앙금이 있다.
감독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양동 일대의 역사를 자세하게 다룬 까닭은,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이기주의를 정당화하거나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식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감정적인 호소를 잠시 미루어둔 이 대목은 장애를 둘러싼 차별과 폭력의 역사에서 어떤 노력과 변화가 필요한지 고민하게 만든다. 장애인이 너무 불쌍하다는 식의 연민은 코앞의 생활을 좌우하는 현실적인 숫자 앞에서 얼마나 쉽게 증발하는가. 또 그것은 지역사회에 오래 쌓여온 억울한 심정 앞에서 상대를 훼손하는 근거로 얼마나 갑자기 방향을 트는가.
다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넓은 이해심과 따뜻한 마음만이 아니다. 감정은 순간적인 힘이 세지만 그만큼 휘발도가 높다. 반면 인식은 움직이는 데 오래 걸리고 티가 잘 나지 않지만 한 번 뿌리내리면 매우 질기고 억세다. 우리 사회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비장애인은 장애 문제와 무관한 존재일 수 없다”(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오월의봄, 2019)는 인식의 변화이자, “(비장애인은) 장애인 차별의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확실한 가해자이며, 이 시스템의 분명한 수혜자”(홍은전, <그냥, 사람>, 봄날의책, 2020)라는 반성이다. 최근 학술장에서 장애학이 인간을 새롭게 사유하기 위한 중요한 지적인 조류로 논의되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머리로 배워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계속 공부하고 익혀야 하는 일이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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