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나라를 떠나는 날

윤영신 논설위원 2021. 5.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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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구직난에 우울증 앓는 2030, 불공정에 다치고 나랏빚 떠안아
선거 포퓰리즘에 재정 무너지면 남유럽 청년처럼 조국 떠날 수도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보궐선거를 한 달여 앞둔 지난 2월 말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를 방문했다. /연합뉴스

얼마 전 뉴스 2개가 눈에 띄었다. 하나는 미국에서 곧 민간인 우주관광이 시작되고 화성 이주용 우주선 시험 비행도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우린 좁은 땅덩이에서 과거에 매달려 적폐몰이 한답시고 4년 세월을 보냈는데 나라 밖은 완전 딴 세상으로 변했다. 다른 하나는 국내 소식이다. 정신과 병원을 찾는 2030이 3년 새 6배 급증했다는 것이다. 구직에 번번이 실패하고 영끌 투자마저 반 토막 나 우울증으로 약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젊은이가 너무 많아졌다.

4차 산업이 꽃피우기 시작한 미국에선 청년들이 넘쳐나는 일자리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이라는데 한국 청년은 수년째 집에서 뒹구는 실업자 신세다.

절망 속에 허우적대는 2030을 향해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벌써 사탕을 던지기 시작했다. 수천만원에서 1억원씩 주겠다고 유혹한다. 돈 줄 테니 표 달라는 것이다. 무능과 위선, 불공정으로 청년들을 좌절시킨 것도 모자라 이제 모욕까지 주려 한다.

한국 청년들의 불행은 문 정부가 출범한 지 딱 1년 만인 2018년 5월에 시작됐다. ‘일자리’를 1호 공약으로 내세운 정권에서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과거엔 아무리 경제 성장이 더뎌도 1년에 20만~30만명씩 신규 취업자가 느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갑자기 10만명 선이 무너지는 고용대란이 벌어졌다. 청년 체감 실업률이 사상 최악인 25%까지 치솟았다. 주 40시간 이상 풀타임 일자리가 200만개 사라졌다. ‘근로자 임금을 대폭 올리면 소비가 늘어 경제가 성장한다’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 실험이 낳은 결과였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면 기업과 소상공인이 고용을 줄인다는 지극히 단순한 경제 원리를 정말 몰랐는지, 알고도 무시한 건지 지금도 미스터리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 주도 성장은 성과가 있었는데 코로나가 흐름을 역류시켰다고 ‘코로나 탓’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청년들 가슴이 또 한번 미어졌을 것이다.

문 정부가 청년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할 이유가 또 있다. 정부의 과도한 씀씀이로 누적된 1000조원의 나랏빚 상당 부분을 그들이 떠안을 판이다. 이 어마어마한 재정이 생산적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용도로 쓰인 것도 아니다. 가덕도 신공항처럼 말도 안 되는 온갖 선심 사업과 출근 명부에 사인만 하면 용돈을 주는 가짜 세금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쓰였다.

여당은 코로나를 핑계로 국민 호주머니에 14조원을 꽂아주고는 지난 총선에서 압승했다. 대통령은 내년 대선 전에 또 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국가부채 느는 속도가 세계 선두권이다. 재정 위기를 피하려면 국민연금·공무원연금·군인연금 개혁을 꼭 해야 하는 상황인데 문 정부는 지난 4년간 손도 대지 않았다. 세금 펑펑 쓰는 선거 포퓰리즘 말고는 제대로 한 일이 없다. 후대가 져야 할 짐은 차곡차곡 쌓여만 가고 있다. 잔혹한 세대 착취이다.

한국 같은 비(非)기축통화 국가에 재정 부실은 총탄 없는 군대와도 같다. 작은 경제위기에도 나라가 흔들린다. 재정 부실 국가의 젊은이들은 생존을 위해 나라를 떠나곤 했다. 타국에서 음식 쓰레기를 뒤지며 하층민 생활을 하더라도 조국을 뒤돌아보지 않는다. 10여년 전 세계 금융위기 때 남유럽 청년들이 그랬다. 그리스에선 자살률이 2%에서 19%로 치솟았다.

지금의 문 정부와 비슷한 정권이 다시 들어서고 국가부채가 빠른 속도로 계속 불어나면 한국 청년들도 나라 밖을 볼 것이다. 그들이 일본이나 중국의 하층민으로 흡수되는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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