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무서운 i’가 온다
백악관도 첫 경고 “심각하게 보고 있다”… 글로벌 증시 요동
글로벌 경제에 급격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대한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거대 경제권뿐 아니라 한국 등 아시아, 남미 등에서도 물가가 크게 꿈틀거리고 있다. 그간 전 세계 각국의 코로나 경기 부양책과 통화 완화 정책으로 시중에 대규모 자금이 풀린 반면, 반도체·철광석 등 각종 원자재·부품 공급망의 복구 지연과 병목 현상에 따른 가격 상승 때문이다. 주식 등 자산 거품이 꺼지고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 세계 증시가 하락세를 보였다.
미국의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미 노동부는 12일(현지 시각)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같은 달 대비 4.2% 올랐다고 발표했다. 2008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당초 전문가 전망치 3.6%를 크게 상회했다. 실제 미국에선 기저귀부터 자동차 등 완성품과 인건비 등 서비스 요금은 물론, 목재와 구리, 휘발유, 옥수수·대두 등 원자재와 식자재, 부품의 가격도 역대 최고치로 치솟고 있다.
백악관은 처음으로 인플레 우려를 공식화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그간 인플레 가능성을 일축해왔다. 현재 6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안을 추진 중인데, 이미 2조달러 규모의 코로나 경기부양 자금을 푼 데 이어, 또 다시 천문학적인 돈이 풀릴 경우 인플레가 심해져 인프라 투자안에 대한 지지가 줄어들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중국에도 인플레 공포가 덮치고 있다. 11일 중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4월 생산자 물가지수(PPI)는 전년 동기 대비 6.8% 급등, 2017년 10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 증시는 충격을 받기 시작했다. 미 연준 등이 긴축 정책에 나설 경우 증시 등 자산 시장에 팽배한 거품이 빠르게 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뉴욕 증시는 11일 크게 하락한 데 이어 12일 개장 직후 나스닥이 1% 넘게 내려가는 등 전반적인 하락세로 거래를 시작했다. 앞서 열린 대만 증시는 4.1%, 일본은 1.6% 내려갔다. 한국 코스피도 12일 1.5% 하락했다.
안 오르는 게 없다… 원유 285%, 구리 100%, 항공운임 50% 폭등
올해 1~4월 조선 3사의 수주액은 전년 대비 7배나 늘었지만 조선 업계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최근 철광석 가격 상승으로 배를 만들 때 쓰는 후판 가격이 급등하면서 생산 비용도 가파르게 뛰었기 때문이다. 최근 후판 유통 가격은 t당 110만원으로 1년 전보다 무려 70% 가까이 올랐다. 한 조선 업체 임원은 “생산 비용은 계속 오르는데 이미 수주한 선박 가격은 올릴 수도 없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모처럼 찾아온 호황 속에 오히려 적자가 날 판”이라고 말했다.
제조 업계가 철강재를 비롯한 원자재값 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코로나 쇼크를 벗어난 글로벌 경제가 회복되면서 지난 1분기 실적은 좋았지만,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생산 비용이 급등해 수익이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수출품을 실어나를 선박과 화물기 부족으로 해운과 항공 운임마저 급등하고 있어 제조 업체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철광석·구리 가격 천정부지로 치솟아
원자재값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코로나 백신 접종과 함께 미국·영국·유럽연합(EU)·중국 등 세계 경제 강국들의 경기가 동시에 회복되면서 원자재 수요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중국 다롄 상품 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철광석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0% 급등한 t당 1326위안(약 23만1000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철광석 가격 인상은 후판·열연·냉연 등 철강재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포스코·현대제철 등 철강사는 최근 조선 3사와 후판 가격을 t당 8만~13만원 인상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 업체 관계자는 “철광석 가격이 올랐는데 철강재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철강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니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렸다”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하필 중국이 환경 정책을 강화하며 철강 생산량을 줄이는 상황에서 코로나 경기 회복기가 겹쳐 철강 가격이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며 “올해 말까지는 각종 원자재값이 고공행진을 할 것으로 보이는데 대응 방안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원자재값 상승 랠리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세계 각국이 경기 회복을 위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 계획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지난 10일 전기동(銅) 현금 거래 기준 가격은 t당 1만724.5달러로 역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4개월여 만에 35% 오른 것이다. 인프라 투자 급증으로 건설·전력 시설용 구리 수요가 크게 늘어난 탓이다. 여기에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구리 가격을 끌어올리는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약 4배 많은 구리를 사용한다.
주요 제품의 핵심 소재인 철강재와 구리 가격이 동시에 오르자 “자동차·가전제품의 판매 가격까지 동반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1.7∼2t짜리 중·대형 차량에는 평균 1t의 철강재가 들어간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원가 상승을 판매 가격에 기계적으로 반영하면 자동차 판매량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면서도 “수익성과 판매 가격의 적정선을 찾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항공 운임도 사상 최고치
국내 수출 기업엔 운임 상승도 큰 부담이다. 해상 운송 항로의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5월 둘째주 기준 3095.16을 기록했다. 사상 최초로 3000선을 넘은 5월 첫째 주(3100.74) 이후 2주 연속이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중국에서 유럽·미주로 가는 운임을 지수로 나타낸 것으로 1998년 1월 1000을 기준으로 한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배를 구하기 어려워 지난해부터 중국에서 생산해 폴란드 배터리 공장으로 보내야 하는 원자재 상당량을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배를 구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비행기로 몰리면서 항공 운임도 치솟고 있다. 홍콩에서 발표하는 화물 운송지수인 TAC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홍콩~북미 노선 운임은 ㎏당 8.48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49% 오른 수치다. 자동차 부품 회사 관계자는 “요즘은 웃돈을 줘도 실어나를 선박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며 “비싼 원자재를 어렵게 구해 만든 제품을 창고에 쌓아두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김용 ‘구글 타임라인’, 돈 받았다 지목된 날 동선과 2㎞ 오류
- 통아저씨 가정사 고백… “친모, 시아버지 몹쓸 짓에 가출”
- ’허위 인터뷰 의혹’ 구속된 김만배, 법원에 보석 청구
- 롯데하이마트, 3분기 영업익 312억원 “5년 뒤 1000억원대 목표”
- 총선 불법 선거운동 혐의…박용철 강화군수, 첫 재판서 “선거운동은 아니다” 부인
- 평창서 사이드브레이크 풀린 레미콘에 치인 60대 숨져
- 규정속도보다 시속 80㎞이상 과속한 초과속 운전자 102명 적발
- [오늘의 운세] 11월 3일 일요일(음력 10월 3일 辛未)
- [오늘의 운세] 11월 2일 토요일(음력 10월 2일 庚午)
- 813억 투자사기 후 잠적… ‘한국 아이돌 출신’ 태국女, 2년 만에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