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청년이여, 청년을 대표하라

김태일 장안대 총장 2021. 5. 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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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치인들이 앞다퉈 청년들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청년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을 거듭한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이 신발 끈을 조이고 있는 민주당에서도, 당 대표 경쟁 샅바싸움을 시작하고 있는 국민의힘에서도 첫 번째 의제는 청년이다. 정의당도 예외가 아니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청년 문제로 분주한 것은 평론가들도 마찬가지다. 온갖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세대론으로 청년 문제를 보려는 논객이 있는가 하면 계급론으로 보는 것이 더 적실하다는 학자도 있다. 청년담론은 젠더론과 결합하기도 하여 연일 상종가다.

그런데 정작 청년 자신들은 이런 현상을 시큰둥하게 쳐다보고 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을 혼비백산하게 했던 일군의 청년들은 싸늘한 눈빛을 여전히 거두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집권 여당은 전전긍긍한다. 민주당에 회초리를 들었던 청년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졌다는 조짐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청년들이 야당인 국민의힘에 지지를 보내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과 민주당 반대쪽의 정치적 상징자산을 독차지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조차도 청년들의 지지는 바닥이다.

청년 담론이 서점가를 뜨겁게 달구고는 있지만 청년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청년 담론은 뜨거우나 청년들의 마음은 얼음이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청년들이 늘 속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속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돌아보라. 기성세대들이 그동안 청년들을 어떻게 현혹했는가.

1990년대 말, 신자유주의 물결이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었을 때 우리가 무엇을 했던가를 생각해보자. 그때 우리가 했던 말은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였다. 성공한 사람들의 생활습관을 본받고 초 단위로 시간 관리를 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었다. 착한 청년들은 그 말을 그대로 따랐다. 요즈음 청년들은 ‘노~오~력’이라는 비아냥으로 기성세대의 그런 충고를 놀려먹고 있지만 그때 청년들은 ‘야망을 가지라’는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그래서 서점에는 자기경영개발서가 흘러넘쳤다. 하지만 청년들은 ‘노력하라’는 말에는 모든 결과 책임을 각자 개인에게 돌리는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 큰 좌절을 느꼈다.

실의에 젖어있는 청년들에게 나타난 것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리고 안철수의 ‘청춘콘서트’였다. 이것이 공전의 히트를 한 이유는 청년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뜻밖의 격려에 눈물까지 쏟으면서 감동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것은 공감과 위로였지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은 없었다. 그래서 청년들은 다시 실의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물론 지금 전개되고 있는 청년 담론은 청년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과 위로를 넘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 좀 다르다. 청년 담론은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대통령과 각 정당의 지도자들이 청년들에게 현금이든, 현물이든 뭘 많이 주겠다고 하는데 청년들은 이런 약속이 얼마나 실현 가능한가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약속을 이행할 능력과 의지에 대한 염려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지경이 되기까지 청년 문제를 정치적으로 소비만 해오던 정치인들의 행태에 대한 불신이 크다. 이런 의구심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청년 문제에 대한 지지와 약속이 이 정도까지라도 만들어지게 된 것은 정치인들의 선의 덕분이 아니라 청년 자신들이 만든 정치적 힘 때문이라는 사실이 그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청년들이 들었던 종이돌멩이(paper-stone)의 힘으로 청년 문제 해결이 여기까지 온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을 해야 하나? 청년들이 자신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촛불광장에서 시민들이 외쳤던 ‘내가 나를 대표한다’라는 깃발을 이제 청년들이 들고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청년 문제 해결이 예측 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걱정이 드는 것은 각 정당에서 ‘자신들을 대표하는’ 청년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비례대표를 통해 아주 작은 숫자만 국회의원이 될 수 있고,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정치세력 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각 정당 내에서 청년들은 조직 자원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청년들이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청년들에 대한 사랑 고백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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