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원 쌈짓돈 된 국립대 학생지도비..이름만 바뀐 기성회비

송명훈 2021. 5. 1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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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립대가 학생들의 수업료 일부를 학생지도비라는 명목으로 교직원들의 쌈짓돈처럼 써온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카톡 상담 1건에 13만 원을 받는 등 부당 집행 실태가 무더기 적발됐는데, 근거가 없다며 사라졌던 기성회비가 이름만 바꿔 되살아났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정치부 송명훈 기자 나와 있습니다.

어제(11일) 국민권익위원회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카카오톡 대화, 이메일 발송도 실적으로 인정해 수당을 지급했다는 거 아닙니까?

[기자]

네, 권익위가 국립대 12개 대학의 학생지도비 실태를 점검했는데요.

이 중 10개 대학의 교직원들이 학생과의 멘토링, 즉 상담했다거나 학내 순찰과 같은 안전지도를 했다고 실적을 제출하면 건당 비용을 책정해 지급하는 식으로 운영됐습니다.

그런데 상담하지도 않고 허위 결과서를 내거나 상담횟수를 부풀리고 돈을 타낸 사례들이 부지기수로 적발됐습니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코로나로 학생들 만나기도 어려웠는데, 실적을 채우려고 카톡이나 이메일까지 구실을 만들었습니다.

한 대학에선 안부를 묻는 수준의 카카오톡 대화를 상담으로 인정해 건당 13만 원을 쳐줬고요.

학생들에게 단체 이메일을 보내고 한 명이라도 수신하면 실적으로 인정해 10만 원씩을 준 대학도 있었습니다.

권익위는 최소 94억 원이 부당 집행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학생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죠?

한마디로 학생은 모르는 학생지도비라는 거네요.

[기자]

이번에 문제점이 드러난 대학들의 총학생회를 접촉해봤는데요.

학생들은 자신들이 낸 수업료에서 학생지도비가 나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교직원들이 낸 실적 보고서대로라면 상담을 받은 학생들이 있어야 하는데, 교수나 조교가 아닌, 일반 행정적 교직원들에게 상담받았다는 학생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학생들도 교수나 조교, 혹은 졸업한 선배들과 멘토링이 이뤄지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일반 행정 교직원과 멘토링은 생소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앵커]

학생들이 제도 자체를 모르고 있고 그 필요성도 공감하지 않는다는 거네요.

이런 제도가 왜 생긴 거죠?

[기자]

기성회비라고 들어보셨을 덴데요.

과거엔 대학 등록금이 크게 수업료와 기성회비로 구성됐는데, 기성회비가 등록금의 80% 정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기성회비를 걷는 거 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고, 교직원들의 급여 보조성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2015년 폐지 됐습니다.

그래서 대학회계를 투명하게 하고 등록금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현재의 대학회계 제도가 만들어진 건데요.

이번 권익위 조사결과를 보면 사라졌다던 기성회비가 이름만 바꾸어 되살아난 거 아니냐. 이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 더 주목할만한 사실은 기성회비 문제로 촉발됐던 재판에서 사법농단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겁니다.

기성회비에 대해 국공립대 학생들이 부당이득 반환 소송을 냈고 1, 2심을 모두 이겼는데 2015년 대법원이 갑자기 결과를 뒤집었습니다.

대학들은 기성회비를 반환할 수 있는 상황을 모면했고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얘깁니다.

당시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재판 거래에 이 기성회비 재판도 이용된 것으로 문서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앵커]

대학도 자체 감시 제도가 있을 텐데, 회의록 살펴보니 견제나 감시는커녕, 오히려 노골적으로 수당을 타내는 방법이 논의됐다죠?

[기자]

대학 회계를 심의 의결하는 재정위원회가 있는데요.

저희가 12개 대학의 재정위원회 회의록을 모두 분석해봤습니다.

지난해 방송통신대 회의록을 보면, "시나리오를 짜신 적이 있느냐", "시나리오를 짜서 예산을 다 소진해야 한다고 해달라"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요

1인당 최대 수당을 받을 수 있게 지급 기준을 쉽게 해달라는 취지입니다.

다른 대학들, 충북대는 "지급에 제약 조건이 많다." 전북대는 "일부러 밥을 사줘야 해서 불편하다"는 불평만 늘어놓을 뿐, 불분명한 지급 기준을 문제 삼은 대학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앵커]

이렇게 허투루 쓰이고 있다면 등록금 내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기자]

국립대 교직원들인 한 해 받아가는 학생지도비가 1인당 600에서 900만 원입니다.

전체 국립대에서 1천100억 원이 넘는 규모입니다.

더는 줄일 데가 없다던 대학들의 변명이 이번엔 좀 궁색해 보입니다.

송명훈 기자 (sm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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