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공수처 '1호 사건' 유감
'전형적 눈치보기 수사' 비판 커
국회의원, 판·검사 비리 집중해
수사 성과로 존재이유 보여줘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1호 사건’ 수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다. 법조계에서 “1호 수사가 공수처 운명을 가를 것”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그간 “떠넘겨 받아서 하는 건 1호 사건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무학에 가까운 갈릴리 어부 출신을 포함해 13명이 세상을 바꾸지 않았는가”라고 자신했다. ‘4월 중 수사 착수’ 약속을 어기면서 고심했다지만 최종 선택은 의아할 따름이다. 검사도 판사도 아닌,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해직교사 특별채용 의혹 사건이라니. 장고 끝에 악수 아닌가.
공수처 출범을 주도했던 여당은 당황하고 있다. “이러려고 공수처를 만들었나 자괴감이…”(안민석 의원), “전형적인 눈치보기 수사”(이수진 의원) 등 날 선 반응이 쏟아진다. 전교조는 “차라리 공수처 문을 닫는 게 낫다”고 맹비난했다. 야당도 “복잡한 사건은 못 다루나”라고 꼬집었다. 공수처의 사기 저하가 우려될 정도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공수처의 역량 부족 탓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공수처는 검사 정원(25명)도 60%밖에 못 채웠고, 설상가상으로 최근 수사관 2명이 이탈했다. 검사 출신은 4명뿐인데 특수수사통도 없어 수사능력에 대한 불신을 사고 있다. 권력형 비리에 정면으로 맞서긴 역부족인 셈이다. 이렇게 된 데는 처장 등 지휘부의 책임이 크다. 병력과 무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전쟁에 나서면 승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청와대와 여당의 책임도 작지 않다. 여당은 검찰개혁 명분을 앞세워 공수처 출범만 밀어붙였지 정작 수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주는 건 등한시했다. 공수처와 검찰이 기소권·사무규칙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하는 걸 봐도 그렇다. 청와대가 공수처 검사 임명 심사 때 특수통들을 이렇다할 설명 없이 배제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특수통의 벼린 칼날이 집권세력을 향할 수도 있다고 지레 겁먹은 것은 아닌가.
출범 4개월이 지났지만 공수처가 보여준 건 논란과 구설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피의자 신분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이 대표적이다. 일요일에 공수처장의 관용차까지 내주는 특별대우를 해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 보은·정실 인사로 정치중립성 논란에 시달렸다. 최근에는 ‘공소권 유보부 이첩 조항’을 내부 사무규칙으로 제정해 검찰과 마찰을 빚고 있다. 1호 사건 여파로 ‘비겁한 공수처’란 오명까지 보탰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이미 쏟아진 물이지만 조 교육감 관련 사건을 말끔하게 처리하는 게 급선무다. 이마저 삐걱대면 조직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 공수처는 조직 규모가 작아 연 3∼4건 정도만 수사할 수 있다. 서둘러 수사 능력을 키워 2호 사건만큼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회의원이나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들의 부패와 비리 척결에 집중하는 게 옳다. 공수처 설립 취지가 바로 그것이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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