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광주 계엄군'의 용기로 진실에 한발짝 더 다가선 5·18

2021. 5. 1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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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가 활동 시작 1년 만에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조사위는 12일 5·18진상규명특별법의 11개 법정과제 중 7개 과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광주에 투입된 장병들로부터 의미있는 증언들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수십년의 침묵을 깨고 진실을 증언한 이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조사위는 5·18 당시 계엄군이 M60기관총과 M1소총으로 시민을 향해 조준 사격했다는 장병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제3공수여단은 1980년 5월20일 오후 10시 이후 광주역과 주요 건물 옥상·감시탑 등에 M60기관총을 설치하고, M1에 조준경을 부착해 시민들을 살상했다. 의미가 작지 않은 가해자의 진술이다. M16 총상이 아니면 시민군이 사용한 카빈총 총상으로 분류해 폭동 혐의를 씌운 신군부의 사실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조사위는 군이 ‘광주 봉쇄’ 과정에서 민간인을 수십 차례 사살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광주교도소 양쪽, 광주~순천 간 고속도로 등을 오가는 차량과 민간인을 상대로 최소 13차례 피격사건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조사위는 광주교도소 일대에서 최소 41구, 주남마을에서 최소 6구의 시신이 사라졌고, 송암동 일대에서도 8구 이상의 시신 확인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추적 중인 행불자를 55구나 특정한 것이다. 조사위는 증언이 나온 신군부의 ‘사체처리반’ 운용 의혹도 조사 중이다. 이와 관련해 광주교도소가 발간한 책자에 실린 “5월23일 오후에 죽어간 사람들의 시체와 부상당한 사람들을 헬기가 와서 어디론가 실어갔다”는 당시 교도관 진술도 규명이 필요하다.

조사위는 1980년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2만353명 중 200여명의 증언을 확보했다고 한다. 원치 않게 진압에 가담한 장병들이 용기있게 증언에 나섬으로써 그날의 진실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은 뜻깊다. 송선태 위원장은 “시위대를 조준 사격한 병사가 유가족을 만나 사죄하겠다는 뜻을 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3월엔 당시 계엄군이 유족을 직접 만나 사죄와 용서를 구한 일도 있었다. 조사위 활동이 진상규명은 물론 해원(解寃)과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조사위는 당시 계엄군의 10%인 2000여명의 증언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날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용기를 내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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