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옛날 극장
[경향신문]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극장가의 대세는 단관 극장이었다. 단성사·피카디리·서울극장이 몰려 있던 종로3가는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렸다. 한 극장에서 한 영화만 상영했기에 화제작이 개봉될 때마다 극장 앞에는 관객들이 장사진을 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서울 관객 10만명을 넘기면 흥행작으로 쳐줬고, 30만~40만명의 관객이 들면 초대박 흥행작으로 분류됐다. 국내 최초 100만 관객을 넘긴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1993년 4월 단성사에서 개봉돼 장장 194일간 상영됐다. 극장 주변에 2~3배를 더 부르는 암표상이 들끓었고, ‘賣盡謝禮(매진사례)’ 표지판도 곧잘 등장했다.
하지만 1998년 CGV강변을 시작으로 멀티플렉스 체인이 부상하면서 옛날 극장들은 쇠락했다. 관객들은 최신 시설을 갖추고 영화를 골라볼 수 있는 멀티플렉스 체인을 선호했다. 1907년 설립돼 한국 최초 영화 <의리적 구토>를 상영한 단성사는 2005년 멀티플렉스로 재개관했으나, 경영난을 넘지 못하고 2008년 문을 닫았다. 1953년 지어진 스카라극장은 2005년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 등록을 예고하자, 소유자가 재산권 침해라며 반발해 극장 상징인 반원형 현관을 허물고 새 빌딩을 건축하며 사라졌다. 고풍스러운 석조건물로, 근대문화유산 가치가 있던 국도극장은 1999년 허물어졌다. 대한극장·서울극장은 멀티플렉스로 변신해 계속 운영 중이나, 이전 명성은 퇴색됐다. 피카디리극장은 CGV 체인이 됐다.
126년 역사를 지닌 국내 최초 실내극장인 인천 ‘애관극장’이 폐관 위기에 처했다. 이 극장은 1895년 개관한 실내극장 겸 공연장 ‘협률사’를 이어받아 1925년 ‘애관’으로 이름을 바꾼 뒤 명맥을 이어왔다. 한국전쟁 때 건물이 소실된 뒤 1960년 재개관했고, 2004년 본관(1관) 옆에 2~5관을 신축해 멀티플렉스와 경쟁해왔다. 그랬던 극장도 코로나19로 경영난이 악화되면서 올해 내로 건설업자에게 팔릴 것이란 소문이 번지고 있다. 인천 시민과 문화단체들이 극장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안병배 인천시의원은 시의회 단상에서 인천시가 애관극장을 공공역사자산으로 선정하고, 매입·보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민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바란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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