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과 5천원권으로 율곡의 인성을 교육?
[경향신문]
강릉 오죽헌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건 신사임당과 이율곡의 캐릭터 조형물이다. ‘세계 최초 모자 화폐 인물 탄생지’란 안내판도 들어섰다. 쑥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의 이율곡 캐릭터 앞 안내판엔 이런 글이 적혔다. “어머니 모델료가 훨씬 높아요.” 5만원권과 5000원권의 대형 지폐 조형물 둘레엔 원, 달러, 엔을 나타내는 통화 기호도 파놓았다.
이게 시작이었다. 오죽헌과 시립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율곡인성교육관’ 현판을 단 건물이 나왔다. 율곡이 후학을 위해 지은 <격몽요결> 같은 걸 떠올리고 들어갔더니, 관람 동선에서 먼저 등장한 것이 5000원권과 5만원권 지폐 대형 인쇄물이다. 모퉁이를 돌면 세계 각국 지폐 인물의 얼굴 부위에 자기 얼굴을 입히는 ‘화폐 방명록’ 장치가 나온다. ‘모자화폐 다른 그림 찾기’ ‘외국화폐 살펴보기’를 할 수 있는 모니터도 설치됐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의 강릉관이나 ‘신사임당·이율곡 특별관’에 온 듯했다.
율곡인성교육관에 물었다. 관계자는 “관람객들 기념 촬영하라고 만들었다. (지폐 전시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다. 다른 전시물도 있고, 이곳에서 여러 교육도 한다”고 말했다. ‘선비와 선비정신’ ‘역사 속 태몽 이야기’ ‘내가 디자인한 초충도’ 같은 전시물과 체험 시설은 ‘지폐’에 부속처럼 딸린 듯했다. 교육관 현판 아래 ‘도전! 구도장원 강릉 어사화 학교’ 안내 현수막이 내걸렸다. 6~7세와 초등학교 저학년이 대상이다. 끝인가 싶었더니 교육관 맞은편에 신사임당과 이율곡의 얼굴 부위를 오려낸 지폐 포토존이 다시 나타난다.
이곳이 교육하려는 인성이란 무엇인가. 돈과 출세인가. 오죽헌 자경문 앞 설치된 표석 문구가 떠올랐다. 율곡이 자신을 경계하는 뜻으로 지은 자경문(自警文) 중 ‘재산과 명예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금욕’이다. “재물을 이롭게 여기는 마음과 영화로움을 이롭게 여기는 마음은 비록 쓸어 없앨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약 일을 처리할 때에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처리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것도 이로움을 탐하는 마음이다. 더욱 살펴야 할 일”이라는 ‘소제욕심(掃除慾心)’을 요약한 말이다.
강릉 |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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