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산다>의 안티테제..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리뷰]

심윤지 기자 2021. 5. 1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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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화는 <혼자 사는 사람들>은 미디어에서 보여준 1인가구 재현의 안티테제다. 혼자 사는 삶을 낭만화하는 대신 혼자 죽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더쿱 제공

614만 8000세대. 2019년 통계청이 인구주택총조사를 통해 집계한 한국의 1인가구 수다. 5년 전(520만가구)부터 꾸준히 오름세다. 전체 가구 대비 비율로 치면 30.2%. 한국에 사는 10명 중 3명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미디어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나 혼자 산다> <온앤오프> <독립만세>같이 예능들을 연이어 내놓았다.

미디어 속 혼자 사는 사람들은 ‘혼자여도 행복한 일상’을 만끽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친구를 초대해 밥을 지어먹고, 갖가지 취미 활동을 하며 자신을 돌본다. 때로는 몇십만원에 달하는 관리비 폭탄이나 퇴근길의 애환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제작진의 기획과 편집을 통과한 연출이다. 인생에도 희노애락이 있는 것처럼, 시청자들의 감정 이입을 도우려면 기쁨 뿐 아니라 적당량의 슬픔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아는 카드값이 잘못 청구됐다며 한달치 사용기록을 전부 읊어달라는 진상 고객을 상대하는 것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대하는 신입사원을 일대일 교육하는 것이 더 불편하다. 더쿱 제공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러한 1인가구 재현의 ‘안티테제(긍정적 입장에 대응하는 부정적 입장)’다.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낭만을 걷어내고 혼자 죽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타인과의 관계를 끊어내고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진아(공승연)가 있다.

진아는 물리적 공간에 스스로를 가둔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다. 혼자 일하기에 최적화된 성격으로 ‘콜센터 에이스’로 인정까지 받는다. 그는 카드값이 잘못 청구됐다며 한달치 사용기록을 전부 읊어달라는 진상 고객을 상대하는 것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대하는 신입사원을 일대일 교육하는 것이 더 불편한 사람이다. 이어폰과 무표정을 방어막 삼아 자신의 세계를 침범하려는 타인들을 필사적으로 막아낸다. 낡은 아파트의 작은 방 한 칸, 진아는 제 힘으로 만들어낸 이 작은 세계에서 홀로 완전하길 소망한다.

하지만 진아의 세계는 생각만큼 견고하지 않다. “그거 알아요? 담뱃불을 성냥으로 붙이면 연기가 다르대요.” 수상한 옆집 남자가 알수 없는 말을 건넬 때, 쿵 소리 나는 소음에 방안이 흔들릴 때 진아의 얼굴엔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그 쿵소리 소음은 옆집 남자가 자기 방에 쌓아둔 성인 잡지에 깔려 죽는 소리였고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도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진아의 세계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진아의 눈에 또 다른 ‘혼자 사는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엄마의 죽음에도 금세 일상을 회복하고 밖으로 나도는 아버지, 혼자 밥먹는 것도 어려워할 정도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후배, 일면식도 모르는 이웃의 죽음에 감정이입을 하는 새로 이사온 옆집 남자까지…. 타인과의 ‘연결’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을 훑고 난 후, 진아의 시선이 멈추는 곳은 ‘혼자가 편하다’고 믿어왔던 자신의 내면이다. ‘나는 정말 혼자인 게 편한 걸까’ 진아는 생각에 잠긴다.

타인과의 ‘연결’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을 훑고 난 후, 진아의 시선이 멈추는 곳은 ‘혼자가 편하다’고 믿어왔던 자신의 내면이다. ‘나는 정말 혼자인 게 편한 걸까’ 진아는 생각에 잠긴다. 더쿱 제공

“영화를 만들 때는 혼술·혼밥 이야기가 막 나오던 시점이었는데, 혼자 밥을 먹고 이를 굳이 인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혼자 있는 게 불완전하니까 얘기하고 싶고 공감받고 싶은 거죠.” 홍성은 감독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20대 중반부터 자취를 시작한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영화 줄거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혼자 사는 것이 체질에 맞다’고 생각해왔지만 우연히 고독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깊은 슬픔을 느꼈고, 이 슬픔의 근원을 들여다보며 혼자 사는 사람들의 세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는 것이다.

영화는 진아의 자발적 고립이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타인들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임을 계속 암시한다. 하지만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우고, 잘 때도 TV를 틀어놓는 진아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그리진 않는다. ‘역시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편리하고 낡은 결론 역시 거부한다. 대신 영화는 건강한 ‘홀로됨’을 찾아가는 진아의 성장에 집중한다. 코로나19 이전에 만들어졌지만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의미있어진 영화다.

영화 속 공간은 한정적이다. 집과 버스, 회사만 오가는 진아의 단조로운 일상 때문이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은 스크린 가득 클로즈업된 배우 공승연의 얼굴이다. 일련의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진아의 표정은 아주 미묘하게 달라질 뿐이지만, 진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혼란과 균열을 보여주기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는 첫 장편영화 데뷔작인 이 영화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배우상을 수상했다. 수상소감을 밝히려 하자마자 눈물이 터져나왔다는 그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몇년차 배우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 연차에 맞는 배우일까를 계속 고민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10년차 배우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연기다. 영화는 오는 19일 개봉.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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