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청춘', 광주항쟁을 조롱하는 자들에게 용감하게 맞서다

TV삼분지계 2021. 5. 1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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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청춘', 뻔한 멜로 위로 시대의 어둠이 진군한다
'오월의 청춘', 이 묘하게 용감한 드라마의 빛과 그림자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5월 광주를 다룬 드라마가 지상파에서 방영이 되는 시대가 됐다. 그것도 특집극도 아니고, 꽃다운 청춘들이 서로 사랑하는 멜로드라마의 외피를 입은 12부작 미니시리즈로. KBS와 wavve 오리지널로 동시에 공개된 드라마 <오월의 청춘>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배경으로 살고 사랑하고 싶었던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과거 SBS <모래시계>(1995)를 시작으로 SBS <코리아게이트>(1995), MBC <제4공화국>(1995-1996), <제5공화국>(2005) 등에서 광주항쟁을 묘사한 바 있지만, 그나마 보수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시대적 분위기가 경직된 이후에는 그 명맥도 끊겼다.

온라인 상의 극우 네티즌들이 광주항쟁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것을 유희화하고, 극우보수세력이 조직적으로 '광주 북한군 투입설'이나 '가짜 유공자' 논란을 조장하는 것에 맞서 진실을 수호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벅찼기 때문이다.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2017)이 클라이맥스에서 노골적으로 광주항쟁을 은유하긴 했으나, 직접적인 호명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그러니 <오월의 청춘>은 오롯이 광주항쟁만을 배경으로 삼은 최초의 미니시리즈이자, 극우세력의 역사 조작 시도 이후 처음으로 직접 광주를 호명한 드라마로 기록될 만하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오월의 청춘>을 어떻게 보았을까? "딱 그 즈음에 연애를 시작하고 1980년대 초반 결혼한" 정석희 평론가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청춘들이 펼치는 로맨스를 '진부한데 궁금하다'고 평했다. 전형적인 장르의 문법을 따라가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앞날을 궁금하게 만드는 초반 연출의 힘이 강하다는 호평이다.

이승한 평론가는 그동안 광주를 다룬 영상매체들이 '그저 평화롭게 살고 싶었던 평범한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세움으로써 탈정치화의 함정에 빠졌던 것과 달리, 이미 드리워진 시대의 어둠을 충실히 묘사하고 운동권 내부와 그 주변부에서 활동했던 이들을 주인공으로 세운 <오월의 청춘>을 용감하다고 평했다. 한편 남지우 평론가는 학교 옥상에서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민주화 투쟁의 불씨를 이어갔던 열사들의 존재를 상기시키며, <오월의 청춘>이 당대 투쟁방식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빤한데 궁금하고 설레다가 두려워지는 묘한 드라마

묘하다. 빤한 인물, 빤한 전개, 어찌 보면 진부한 설정의 연속이다. 그러나 토를 달고 싶지 않다. 두 주 만에 어느새 주인공 명희(고민시)와 희태(이도현)의 편이 됐으니까. 벽에 걸린 달력의 '5'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마 많은 이들이 이 둘의 앞날을 걱정했을 것이다. 풋풋한 둘의 사랑 놀음에 설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지, 5월이었지. 이미 정해진 암울한 미래가 아닌가. 시대적 배경만으로도 숱한 고난이 예상되건만 거기에 능력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악당 황기남(오만석)까지 활동을 개시하지 않았나.

희태 아버지 기남과 명희 아버지 현철(김원태)은 어떤 악연이 있는 걸까? 기남의 대사가 심상치 않다. "딸내미 간수 좀 하소. 인자 아도 아닌디. 나도 못 봐줍니다잉." 과거 무슨 일이 있었기에 경고하러 온 걸까? 왜 현철은 딸 명희의 진로를 막았던 걸까? 뿐만 아니라 본의 아니게 오작교 역할을 했던 수련(금새록)이 두 사람의 편일지, 방해꾼일지 궁금하고 수련이 오빠 수찬(이상이)이 명희를 향한 해바라기를 계속할 것인지 그도 궁금하다. 이처럼 궁금한 게 많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성공이 아닐는지.

흔히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오월의 청춘>의 선전의 경우 연출의 공이 크지 싶다. 우선 주인공과 시청자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 놓고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갈 모양이다. 딱 그 즈음에 연애를 시작하고 80년대 초반 결혼한 나로서는 영 남의 얘기 같지는 않은, 그러나 내 얘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청춘이다. 명희에게 '사랑 그거 별거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가 '끝까지 지켜'라고 하고 싶었다가, 맘이 오락가락한다. 이러니 묘하달 밖에.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용감한 일보 전진, 이런 작품이 필요했다

<오월의 청춘>이 그리는 로맨스는 전형적이다. 권력을 쥔 가문과 재력을 지닌 가문 사이의 정략결혼 논의가 오가는 가운데, 가난하지만 뜻이 곧아 꺾이지 않고 당당한 여성이 들어와 선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이 드라마의 지리적 배경은 광주고, 시대적 배경은 1980년 5월이다. 전형적인 로맨스 세팅과 화사한 파스텔톤 미장센 사이로 자꾸만 시대의 어둠이, 예정된 비극의 전조가 침범해 들어온다.

늘 근사하게 웃으며 인생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희태(이도현)에겐 미혼모의 자식으로 손가락질 당했던 과거와, 운동권 친구 경수(권영찬)가 치료해달라고 데려온 석철(김인선)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있다. 명희(고민시)에게도 아직 정확한 전말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과거 아버지 현철(김원해)이 보안부대에 끌려갔던 악몽 같은 기억이 있다. 연행당해 강제 입대 끝에 공수 특전여단에서 충정훈련을 받고 있는 경수는 아마 조만간 친구 희태와 사랑하는 여인 석철이 있는 광주로 투입될 것이다. 이미 한껏 드리워진 시대의 어둠 위로, 멀리서부터 신군부의 군화 소리가 다가오는 중이다.

5월의 광주를 그리는 작품에서 '평화로울 수 있었던 일상'을 강조해 비극성을 강조하고 관객의 공감대를 유도하는 전략은 새로운 게 아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2007)나 <택시운전사>(2017) 모두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고 싶었던 이들이 비극에 휘말리는 과정을 충실하게 묘사한 바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선택은 자칫 '그저 착실하게 살다가 비극에 휘말린 소시민'만 선택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능동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꾀했던 사람들을 배제하는 함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이미 일상 속에 드리워져 있었던 시대의 어둠을 공들여 묘사하고, 운동권 내부와 그 주변부에서 세상의 변화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극 중심부에 세운 <오월의 청춘>의 선택은 영화 <스카우트>(2007)를 연상케 하는 용감한 일보 전진이다. 안방극장에도, 진작 이런 작품이 필요했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학교 옥상에서 추락해 죽었던 이들

수련(금새록)은 학교(전남대) 건물에 올라 "어용교수 물러가라"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발을 헛디뎌 옥상에서 떨어진다. 함께 있던 희태(이도현)는 수련을 병원으로 데려가 간호사인 명희(고민시)를 만나고, 어찌 된 일이냐 묻는 명희에게 "옥상 난간에서 나대다가 자빠졌다"고 말한다. 수련은 가벼운 뇌진탕 진단을 받았을 뿐,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

학내 시위 중 수련이 추락하는 이 장면은 러브라인의 주역인 명희와 희태를 만나게 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삽입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 시기, '학교 옥상'에서의 '추락'이라는 키워드는 관객의 정치적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 80년대를 지나며, 광주를 애도하고 군부를 규탄하는 목적으로 학교 옥상서 떨어져 자살한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임미리는 이 시기 대학생의 저항적 자살 서른 건을 분석하며, '대학교'라는 장소에서 '분신' 혹은 '투신'이라는 공개적인 방식을 택해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열사들은 소환한 바 있다. 1986년 서울대에서 투신한 이동수는 수련처럼 "어용교수 물러가라"를 외쳤고, 1991년 분신한 박승희는 수련처럼 전남대생이었다.

민주화 운동이라는 소재를 다루기로 한 젊은 창작진이라고 하여 소재 앞에 무조건적으로 엄숙할 필요는 없으며, 이에 대한 대중의 허용이 조금 더 느슨해질 필요도 있다. 그러나 지난달 벌어진 SBS <조선구마사> 사태에서도 보았듯, 한국은 역사적 문제를 해소하고 그것을 창작으로 소화하는 방식에 대해 어떤 합의에도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 창작진에 제안할 수 있는 돌파구가 있다면, 다루고자 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유지하고, 창작의 전 과정에서 쇼트 바이 쇼트로 고도의 예민함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오월의 청춘>이 이제 막 주연으로 발걸음을 뗀 이 뛰어난 배우들에게도,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 그 자체에도 이상적인 필모그래피가 되기를 바란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Instagram @jmbar_jwjw

[사진=KBS & wavve.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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