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증거를 만들라는 건가" 한강 사건에 뿔난 경찰들

임지혜 입력 2021. 5. 12. 15:41 수정 2021. 5. 1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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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일일이 수사 상황 보고하나"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 호소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화면 갈무리
[쿠키뉴스] 임지혜 기자 =한강 실종 대학생 고(故) 손정민(22)씨의 사망 사건을 두고 경찰의 늑장 대응이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경찰관들은 국민에게 일일이 수사 상황을 보고할 수 없다면서 "은폐해서 좋은 게 뭐가 있나"고 반박했다. 

12일 온라인에서는 손씨 실종 수사와 관련해 경찰청 소속으로 밝힌 누리꾼들의 하소연이 담긴 글과 댓글이 캡처본으로 퍼지고 있다. 이 글들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처음 올라왔다. 블라인드는 소속 회사 메일 계정으로 인증 절차를 거쳐야 가입할 수 있는 익명 직장인 전용 앱이다.

경찰청 소속이라고 밝힌 A씨는 지난 6일 "실족인지 살인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면서 "대체 이걸 왜 경찰이 은폐한다고 생각하나. 이걸 숨겨서 좋을게 뭐가 있나"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수사 관련 사항은 담당자가 같은 경찰관에게도 말할 수 없다"면서 "더군다나 뉴스에 이렇게 (이슈화) 나오는데 (은폐는) 절대 불가능하다. 대통령이어도 안 되는 거니까 결과를 제발 기다려달라"고 했다. 

2019년 12월부터 시행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기소 전 사건과 관련한 내용은 일절 공개할 수 없으며 내사나 불기소 사건도 수사 중인 형사사건으로 보고 비공개 원칙으로 한다. 다만 기소 이후에만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한적인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A씨는 단순 오해로 마무리된 순찰차 목격담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한 누리꾼이 손씨가 실종됐던 지난달 25일 한강공원에서 경찰이 출동한 것으로 보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경찰차 6대가 오더니 플래시 켜고 계속 돈다"는 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실종 당일 경찰이 이미 손씨의 실종 사실을 인지하고 수색 작업을 펼쳤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한강변 식당 건물 주차장에서 차량 접촉사고로 순찰차 2대가 온 것을 오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A씨는 "경무관 출신 삼촌을 뒀다던 누리꾼은 순찰차 6대가 은폐했다고 쓴 글이 (사실이) 아니라는 기사가 나오자 글을 삭제하고 사라졌다"면서 "직원들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알 거다. 현직서장도 관할 다른 순찰차를 여러 대나 못 부른다. 청장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꾸 말도 안 되는 글 퍼다가 나르고 사실이 아니면 삭제하고 유언비어 퍼뜨리는 사람들 처벌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화면 갈무리
또 다른 경찰청 소속 B씨는 "한강 사건보다 화제는 훨씬 덜 된 사건이지만 코난들(온라인에서 추리하는 사람들) 개입으로 루머가 몇 개 생긴 사건 수사를 해본 입장에서 사견을 적자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수사보다
없는 사실을 없는 사실이다'라고 증명하는 수사가 훨씬 어렵고 노력,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고 지적했다. 

경찰청 소속 C씨는 "의혹만으로 확신에 차서 범인이 누구냐, 아니냐를 말하는 건 너무 성급한 접근"이라면서 "경찰이 그렇게 행동하면 자칫 생사람 여럿 잡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사람의 생명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인 만큼 신중하고 치밀하게 채증하고 완벽한 사건구성으로 진상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면서 "경찰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는건 알지만 아직 수사 중인 상황인 만큼 좀 더 지켜보고 판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공들인 수사 치고 현재까지 나온 결과물이 초라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일부 경찰은 날을 세웠다. 

한 누리꾼이 손씨가 친구에게 "골든 건은 네가 잘못했다"고 언급한 것을 두고 최근 경찰이 '골든은 가수'라고 발표한 것에 "민망스럽다"고 비판하자 경찰청 소속 D씨는 "골든을 가지고 중요 단서라면서 음모론을 제기하니까 알려준 것"이라며 반박했다. 

D씨는 "수사를 아무리 열심히 하고 많은 인력을 투입해도 애초에 없는 증거를 만들 순 없다"면서 "수사 진행사항 발표가 초라해서 민망한가. 그럼 없는 증거를 만들어 바쳐야 만족하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글들을 접한 다른 누리꾼들은 "경찰을 못 믿으니 그런 것" "수사가 늦어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화면 갈무리
반면 일각에서는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음모론과 경찰을 향한 비판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누리꾼은 "사건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슬픔을 강요하고 수사 결과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중립하는 이들을 비꼰다"며 지적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수상한 정황 많고 (손씨의 친구가) 의심스러운 건 맞다"면서도 "아직까지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섣불리 친구가 범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론은 의심을 넘어 이미 범인으로 단정짓고 '자수해라' '잡아서 처벌해라'라고 한다. 이게 정상적인 여론일까 싶고 무섭다"고 했다. 

이 외에도 "일단 경찰 결과를 지켜보자" "경찰도 힘들겠다" "의심 단계까진 괜찮은데 이미 마음속으로 범인으로 확정하고 신상 터는 건 선 넘은 듯" "방구석 코난과 언론의 합작품" 등 의견이 나왔다. 

경찰은 지난 9일 손씨와 함께 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신 친구와 그의 아버지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10시간가량 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손씨 사건에는 서초경찰서 7개 강력팀이 달라붙어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한강경찰대와 기동대 등도 자료 수색을 위해 투입된 상태다. 경찰은 현장 주변 등 총 54대의 CCTV를 확보했고, 실종 시간대 한강공원에 출입한 차량 133대의 명단을 확보해 일부 블랙박스 영상도 확인하고 있다. 

손씨의 부검 정밀 결과는 이르면 이번주 나올 전망이다.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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