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푸르지 않아도 우리들은 자란다

한겨레 2021. 5. 1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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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최현우의 오늘의 날씨]최현우의 오늘의 날씨
게티이미지뱅크
부모와 자식은 우연히 만나 운명을 살아가지만, 끝내 같은 세상에서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그래서 부모가 된다는 건,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을 온전하게 키워내고, 결국에 아주 멀리 떠나보낼 자신. 소유로 여기지 않으면서, 가진 전부를 기꺼이 줄 그런 자신.

얼마 전 편의점에 들렀다가 한 아이의 들뜬 목소리를 들었다. “아빠, 오늘 맥주 마시면 안 돼? 맥주!” 나는 라면을 고르다가 흠칫 놀라 쳐다봤다. 여섯살 남짓으로 보이는 아이가 벌써 아빠와 대작을? “맥주는 왜!”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목소리를 낮추면서 맥주 앞에서 서성이는 아이를 끌어당겼다. “맥주 사자!” 아이가 급기야 큰 소리로 떼를 썼다. 나는 순간적으로 남자의 인상착의를 훑어봤다. 요즘 아동학대를 자행하는 이들의 뉴스 기사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남자는 누가 봐도 당황했으나 당황하지 않은 듯이 굴면서 수그려 앉아 아이에게 뭐라 말하더니 재빠르게 아이를 들어 안았다. 그러고는 한쪽 벽에 진열된 버터구이 오징어를 황급하게 집어 계산을 하고 나갔다. 아, 너는 아빠가 반주할 때 옆에서 오징어를 얻어먹고 싶었구나. 그랬구나. 계산대의 직원과 나는 슬쩍 웃음을 참았다. 어린이날이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상상할 수 없지만, 어렸을 적 이맘때는 운동회 시즌이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의 사이쯤. 그리고 스승의 날을 앞둔 학부모들이 햄버거나 피자를 사 들고 와서 미리 흰 봉투를 건네기도 하던 운동회. 교복이 춘추복으로 바뀌는 탓에, 아침에는 조금 쌀쌀하게 젖었다가 오후 들어 포근하게 마르는 셔츠의 감촉이 참 좋았다. 창문을 통과하여 교실 바닥으로 미끄러지는 햇볕 속으로 그림자로 만든 나뭇잎들이 춤을 추듯 흔들렸다. 나른한 공기. 비릿한 꽃향기. 운동회를 준비하며 각 반의 반장들이 벌이는 묘한 신경전. 반에서 축구를 잘하는 아이는 급식을 받으려는 줄에서 새치기를 허락해주는 등의 특별 호위를 받으며 결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맘때의 운동회를 떠올리면 짐짓 서글픈 생각이 든다. 중학교 운동회 이후로 나는 운동회가 끔찍하게 싫었다.

그때의 아이들은 어른이 봐도 얼른 알아챌 수 없는 방식으로 계급을 표현했다. 당시 중학교에는 지정된 교복과 체육복이 있었지만, 같은 교복이라도 연예인이 런칭한 고급 브랜드에서 교복을 맞추거나, 체육복 상의 속에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유명 메이커 티셔츠를 받쳐 입거나, 중학생의 용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시계나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식으로 은밀하지만 확실하게 계급을 드러냈다. 우리는 그런 물건에 집착했다. 그것을 살 수 있는 집안이냐 아니냐 하는 구분으로 유년의 계급이 결정되기도 했다. 어른들의 욕망을 학습하던 시기였다.

처음으로 엄마에게 나이키 신발을 사달라고 졸랐다. 우리들의 운동회는 일 년에 한번 학교 안에서 정해진 옷차림을 벗어나 마음껏 멋을 부리는 일종의 패션 투기장이었다. 중학생 신발 한 켤레에 십만원이 넘어가는 가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엄마는 나의 발이 더 클 거라는 말로 요구를 거절했다. 그렇게 처음 시도한 나의 계급투쟁(?)은 싱겁게 끝이 나는 듯했으나, 운동회 전날 무려 퓨마 츄리닝을 건네는 엄마는 그때 나의 눈에 흡사 무사에게 보검을 하사하는 왕처럼 보였다. 이것은 퓨마다. 나이키보다는 못하지만, ‘PUMA’ 알파벳 이니셜 위에 날렵한 맹수가 그려진, 내게도 퓨마가 생긴 것이다. 나는 그날 밤 퓨마를 머리맡에 두고 새 옷 냄새를 맡으며 잤다. 아프리카 초원을 힘껏 뛰는 꿈을 꿨다.

아이들의 어긋난 심리를 교묘하게 놓치지 않는 건 언제나 어른들이다. 동네 시장마다 저런 메이커 티셔츠나 운동화의 모조품들이 넘쳤다. 어른들의 눈에는 일견 흡사하고 티가 나지 않아 보였겠지만, 당시의 아이들은 상표의 위치, 섬유의 질감, 박음질의 모양, 디자인 넘버 등 사소한 디테일까지 전부 감별할 정도로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이미 아이들은 어른들을 능가하는 안목을 가지고 진짜가 아닌 아름다움을 멸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날 운동회에서 나의 퓨마는 퓨마가 아니라 치타거나 그냥 덩치가 큰 고양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단순히 메이커가 갖고 싶었을 뿐, 그것의 품질을 구별할 안목이 없었던 나는 아이들에게 처참하게 조롱당했다. 실패한 혁명은 역모가 된다. 그래도 나의 주군, 엄마를 믿었기에 아이들에게 힘껏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메이커 감별사를 자처하는 친구까지 소환되어 저런 퓨마를 본 적 없다는 말로 나는 끝내 패배했다. 그때 엄마를 향한 그 배신감이란. 나는 족구 경기의 반 대표 선수였으나 번번이 공을 놓쳤고, 마음은 이미 지나가다 돌에 맞아 쫓겨난 길고양이가 되어 집으로 향했다.

“엄마 이거 퓨마 매장 가서 사 온 거 아니지?”

“매장 가서 사 온 거야, 왜?”

“…이제 이런 거 사지 마.”

쓰레기통에 츄리닝을 구겨 넣고 방문을 잠갔다. 거짓말이나 하지 말지. 아이들의 세상이 어른들의 세상보다 작고 하찮더라도, 내게는 그 세상이 전부인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것을 왜 무시하는가.

그러나 엄마를 향한 원망은 얼마 후에 나를 둘러싼 세상을 향한 냉정함으로 변모했다. 나의 궁핍은 너희의 비웃음을 위한 재료가 아니다. 동정을 받는다고 고마워해야 할 이유도 되지 않는다.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거기에 우열은 없다. 너희들은 고작 누군가보다 비싼 물건으로 치장하며 너희의 삶에 안도할 뿐이지 않은가. 그게 아니라면, 너희가 나보다 더 나은 점이 무엇인가.

나는 그날 이후로 대학에 갈 때까지, 엄마에게 비싼 무언가를 사달라고 해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도 내가 가진 모종의 비틀린 기질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 건 하기 싫었고 남들이 안 하는 일을 골라 잘하려고 했다. 타인이 말하는 옳음과 그름 속에서 허점과 위선을 찾아내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사람이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예의와 선의를 한낱 나약함으로 여기곤 했다.

시간이 꽤 흘러 독립을 갓 시작했을 무렵, 오랜만에 본가에 들러 하룻밤을 지냈을 때. 잠옷이 없어 서랍을 뒤지던 중에 나는 퓨마를 다시 만났다. 잘 개켜진 나의 퓨마. 내가 버렸어도 엄마는 버리지 않은 나의 퓨마. 자신과 치수가 맞으니 종종 입는다는 엄마에게 이거 모조품이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멀쩡한데. 엄마의 말에 나는 웃었다. 맞아, 이렇게 멀쩡한데.

그러니까 나는, 아주 멀쩡하게 자랐다. 혼자서는 도저히 지나갈 수 없었던 순간도 엄마의 손에 잘 개켜져서 멀쩡하게 건너왔다.

이제 하나둘씩 부모가 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막연한 망설임이 생긴다. 나도 아직 더 자라야 할 것 같은데, 누군가가 자라는 데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아이들의 세상을 영영 알지 못하고, 토라진 아이의 방문을 함부로 뜯고 마는 그런 폭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부모가 된다는 건 결심과 다짐만으로 해낼 수 있는 영역의 삶은 아닐 것이다.

나의 부모를 골라 선택할 수 없는 일처럼, 나의 자식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모와 자식은 우연히 만나 운명을 살아가지만, 끝내 같은 세상에서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그래서 부모가 된다는 건,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을 온전하게 키워내고, 결국에 아주 멀리 떠나보낼 자신. 소유로 여기지 않으면서, 가진 전부를 기꺼이 줄 그런 자신. 이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고 쉽게 여겨서도 안 되는 일이므로, 타인이나 세상이 강요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다만, 나도 언젠가 아이와 함께 편의점에서 버터구이 오징어를 사 먹는 사람 정도는 되어보는 상상을 한다. 다 풀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혼자만의 책장 속에 꽂아 놓고 언제라도 뿌듯하게 여길 수 있는 수학 문제집처럼. 때로는 서로 미워하겠으나 끝내 서로 용서할 수 있다면, 나를 최대한 늘여 아이에게 입혀주고 싶다. 내가 그 정도의 선의와 의지는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었기를 바란다.

아, 그런데 그때가 와서 아이의 턱관절을 염려하는 아내의 미움을 받으면 어떡하지. 그렇지만 나의 아이는 기꺼이, 버터구이 오징어를 위한 비밀 결사대를 함께 결성해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서투른 거짓말로도 온전한 마음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말이다.최현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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