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 23살 선호와 그 아버지를 처음 만나던 날

한겨레 2021. 5. 1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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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6일 월요일, 정의당 경기도당 사무처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산재 사망사고 유족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함께 가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지역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 뉴스를 접할 때마다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꼈고 이런 후진적인 노동조건이 바뀌지 않는 현실에 무기력감을 느껴 절망해왔는데, 아버님께서는 다시는 선호와 같은 헛된 죽음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거리에 나서서라도 끝까지 싸워나가겠다는 말씀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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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왜냐면]
고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6일 오전 평택시 안중읍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아들의 빈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평택/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4월26일 월요일, 정의당 경기도당 사무처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산재 사망사고 유족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함께 가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고인이 있는 안중백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고 이선호군과 아버님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아버님께서는 만 23살밖에 안 된, 그것도 아버지 일을 도우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독자인 아들이 신호수도 안전관리자도 안전모도 없는 상황에서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원인이 충분히 파악되지도 않아 ‘이대로는 아버지로서 부끄러워 아들을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없다’고 절규하셨다. 제2, 제3의 이선호가 나와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도 강조하셨다.

말씀드렸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위해 함께 싸워나가겠다고. 주변에 산재 사망사고 대책위 활동을 했던 전문가들의 조언도 듣고 이곳저곳 분주히 대책위 구성 제안도 하고 기자회견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나아가 당시 산재 사망사고를 유일하게 목격한 외국인 노동자의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도 확인해 1차 검진을 진행하고 한 대학병원 입원 수속까지 시킬 수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아버님께 고마웠다. 지역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 뉴스를 접할 때마다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꼈고 이런 후진적인 노동조건이 바뀌지 않는 현실에 무기력감을 느껴 절망해왔는데, 아버님께서는 다시는 선호와 같은 헛된 죽음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거리에 나서서라도 끝까지 싸워나가겠다는 말씀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언론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취재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인 이선호군의 죽음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 국민청원도 진행되고 있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더는 이 땅에서 꽃다운 젊은이들의 죽음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공명을 이뤘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고 내 가족이,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이선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재사망률은 오이시디(OECD) 국가 중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한해 평균 10만명 정도가 산업재해를 당하고 2400명 정도가 사망한다. 사망사고 4건 중 하나는 5인 미만의 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지난 1월26일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를 ‘중대산업재해’라고 하며, 각각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 7년 이상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이 법은 내년 1월27일부터 시행된다. 그것도 상시 노동자가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과 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이면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부터 적용을 받는다. 당연히 이 법은 이선호군의 경우에도 적용되지 않는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뒤에나 시행되니 그동안은 무용지물인 법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애초 제외다. 노동자 4명 중 1명은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듯 한계가 있지만, 재계나 보수·경제 매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만 하면 기업 활동이 위축돼 우리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양 여론을 호도한다. 이러한 왜곡 속에서 이선호군의 죽음 이후에도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와 현대제철 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위험을 외주화해서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2인1조 작업을 한 사람에게 맡기는 등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노동자 김군, 태안화력발전 노동자 김용균, 건설노동자 김태규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이 강화돼야 하는 이유이다.

김기홍│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민주노총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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