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진 않을 겁니다, 머글의 로스쿨 생존기

한겨레 2021. 5. 1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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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들 귀농서신]
로스쿨에서 쎄빠지게 공부한 덕에 삶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새 실무수업 중에 만난 판사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진솔하게 상대를 귀한,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시는 게 느껴지기에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훌륭하신 분의 최고 걱정이 자녀들이었어요.

[엄마아들 귀농서신] 선무영 | 시골로 가려는 아들·로스쿨 졸업

곧 변호사가 되리라 생각되던 아들이 이제는 농부가 되겠다니 당황스러운 어머니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아쉬울 게 없습니다.

인생에서 최선을 다해 3년 공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며, 로스쿨을 성장할 기회로 여겼죠. 잘 살아남으면 자연히 변호사가 되리라 생각했었는데, 아쉽게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스스로 ‘머글’(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마법사가 아닌 일반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공부했어요. 수험 법학을 오래 한 사람, 관련 경력자, 법학과 졸업자들과 같은 법사(法士)들 사이에서 법을 전혀 모르는 저는 머글인 거죠. 그래서 더 열심히 했습니다. 성실하면 어떻게든 살아남아 결국 이뤄지리라 생각했죠. 닉네임을 잘못 정한 걸까요. 계속 머글로 남겠네요.

입학 전에는 법학 경험이 없더라도 능력치에선 제게 ‘절대우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막상 대단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생각이 바뀌었어요. 회계사에 금융감독원장 비서관 하던 형, 4개 국어 정도 가볍게 하는 형, 약사 누나, 서기관 누나, 지피에이(GPA) 만점의 동생, 특전사 출신에 대위 제대한 강철 몸의 형. 다들 삶을 대하는 태도들이 훌륭했죠.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자신감,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의지, 철저한 자기관리, 차분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방법 등 많은 것을 동기들한테 배웠습니다. 시험 성적을 처음 받아봤을 때 마음이 무거웠죠. 최선을 다했고 최고의 성적을 기대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공부법이 문제인가 고민했습니다. 숨 쉬듯 공부하는 사람이 있고, 뭐든지 표를 정리해서 암기하는 사람, 중얼거리며 공부하는 사람, 끊임없이 문제만 푸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한 자라도 더 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하게라도 공부시간을 많이 가져가는 사람이었어요. 1학년 때 ‘랩규’라는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랩처럼 강의를 하셔서, 이름 중 한 글자와 랩을 붙인 별명이었죠. 그 수업 첫 강의부터 마지막까지 녹취록을 작성했습니다. A4 10포인트로 200장 넘었어요. 2학년 때는 출강 판사님의 형사재판실무도 녹취했어요. 미련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그거면 될 줄 알았죠. 열심히 하지 않았기에 떨어진 건 아닙니다. 제가 무얼 잘하는지,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하는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채 진학을 선택했기에 따라온 당연한 결과랄까요.

설령 천재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법학 적성이 뛰어나 숨 쉬듯 법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하루는 24시간으로 정해져 있어요. 본인이 가장 빛날 수 있도록 시간을 써야 해요. 가만 보니, 저는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직접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것도 좋아하죠. 몸이 더러워지도록 흙 만지는 것도 좋아하고, 땅벌레도 좋아해요. 그럼 제가 가장 빛나기 위해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할까요.

서울 밖에서 산다는 건 능력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원체 도시생활을 꿈꾸며 이촌향도한 사람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시골에 가서 산다는 말은 비우고 살겠다는 말로 이해하기도 하죠. 아녜요, 저는 인생을 시골에 걸어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시간을 쓸지 스스로 정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사람들이 기피하는 시골이 오히려 기회의 땅이죠. 시골에서 활용될 훌륭한 달란트를 가졌고, 농부인 부모님을 뒀으며, 시골의 삶을 해봄 직한 도전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변호사가 되겠다고 학원에 가서 쓰는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겠습니까.

로스쿨에서 쎄빠지게 공부한 덕에 삶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새 실무수업 중에 만난 판사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수업이 끝나면 꼭 원하는 사람 서넛을 모아 학생들이 먹기 어려운 맛있는 밥을 사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질문도 다 받아주시고요. 진솔하게 상대를 귀한,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시는 게 느껴지기에 좋았습니다. 마지막 수업에 학생들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시고는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해주셨어요. 그런데 그렇게 훌륭하신 분의 최고 걱정이 자녀들이었어요. 인간사 걱정은 크게 다르지 않나 보다 싶었죠. 아무리 봐도 교수님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을 것 같은데, 바쁘니 남의 손에 아이를 가르치게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일로만 바빠 제일 마음이 가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면 성공이 무슨 소용일까요. 시골 삶은 더 자기주도적이며, 유연하고 가족과 함께인 시간이 많은 삶 아닙니까. 저에겐 최고의 선택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편집자 주: 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년과 10년차 농부인 여성이 ‘귀농’을 주제로 편지를 교환합니다. 한칼 공모를 통해 선발된 두 모자(母子)가 이야기 나눌 귀농의 꿈, 귀농의 어려움은 이 도시의 꿈, 그 도시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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