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서 美 '백신 관광' 인기몰이..美당국, 불황 타개 위해 홍보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싶으신가요? 미국 비자 있으세요? 그럼 연락 주세요."
미국행 '백신관광'을 홍보하는 한 여행사 광고 멘트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멕시코와 페루 등은 물론 아메리카 대륙 최남단 아르헨티나에서까지 중남미 백신 관광객 수천 명이 미국행 항공권을 끊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신 맞고 시티투어까지: 중남미는 코로나19 대유행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지역 중 하나다. 이달 기준 사망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언제 돌아올 지 모르는 백신 접종 순서를 기다리며 조급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백신여행은 직접 준비해 가기도 하고, 여행사를 끼고 가기도 한다. 여행사를 끼면 접종 예약부터 항공편, 호텔, 쇼핑과 시티투어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지난달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1번만 맞아도 되는 존슨앤드존슨(얀센·J&J) 백신을 맞고 멕시코로 돌아온 글로리아 산체스(66)와 남편 앙헬 메네데스(69)는 "우리는 이 나라의 공중보건서비스를 믿지 않는다"면서 "미국에 안 갔으면 여기서 백신을 못 맞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 부부의 백신관광은 멕시코시티에 있는 여행사에서 준비했고, 접종 예약 등 미국에서의 일정은 여행사의 라스베가스 협력업체가 모두 챙겼다고 한다.
산체스와 메네데스 부부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접종소에서 멕시코 여권을 보여주고 맞은 뒤, 일주일간 통으로 관관을 즐겼다. 산체스는 "미친 듯이 걷고,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고, 쇼핑도 좀 했다"고 말했다.
◇항공권 가격 30~40% 올라…美 당국 공공연히 홍보: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는 항공권 가격은 3월 중순부터 30~40% 올랐다고 여행사(RSC Travel World)를 운영하는 레이 산체스는 전했다.
산체스는 "백신 맞으러 미국에 가는 멕시코 등 중남미 사람들은 수천 명에 달한다"면서 "휴스턴, 댈러스, 마이애미, 라스베이거스가 인기 여행지"라고 했다.
백신관광객들이라해도 방문 목적에 백신접종이라고 적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들 규모가 정확히 몇 명이나 되는지 공식적인 데이터를 찾을 순 없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그러나 백신관광이 암암리에 이뤄진다고만 볼 순 없다. 미국 주요 도시들은 이미 이런 추세를 읽고, 코로나 사태 이후 재정난에 빠진 호텔과 레스토랑 등 각종 서비스 부문을 지원하기 위한 백신관광 홍보를 자처하고 있다.
뉴욕시는 지난 6일 트위터에 "뉴욕으로 오세요. 백신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아니코닉한 관광지에서 존슨앤드존슨 백신을 맞으세요"라고 적었다.
주 페루 미국 대사관도 최근 트위터를 통해 관광객들이 의료 진료를 위해 미국을 방문할 수 있으며, 백신 접종도 물론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로이터의 인터뷰에 응한 미국 백신관광 경험자들은 모두 신분을 위장하지 않고도 여행 비자와 본국 신원확인만으로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아메리카 남단 아르헨티나에서 마이애미로 백신관광을 가려면 대략 항공권 2000달러, 일주일 숙박 550달러, 식비 350달러, 차량렌트 500달러 등 총 3400달러(약 380만 원) 정도가 든다. 물론 백신은 무료다.
◇지연되는 접종순서·낮은 정부 신뢰도 배경: 백신관광은 처음엔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했지만, 이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하나의 사업 모델이 됐다는 분석이다.
페루 리마의 한 자동차 부품점에서 일하는 A는 "다음 달에 캘리포니아에 가려고 돈을 모으고 있다"면서 "여기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백신을 곧 맞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A는 행여라도 자신의 원정백신 계획이 무산될까 익명을 요구했다.
여행사의 산체스는 미국행 백신관광의 가장 중요한 배경은 중남미 국가들이 겪고 있는 접종 지연 때문이라고 했다. 중남미 국가 중엔 백신을 자체 생산할 인프라가 없는 곳이 많고,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은 약 2억6200만 회분의 백신이 접종됐는데, 이는 인구 규모가 미국보다 2배 정도 많은 중남미 전체 총 접종량의 2.3배에 달하는 물량이다.
정부 접종캠페인에 대한 불신도 한 요인이다. 당국이 압수한 가짜 백신, 1회 백신을 겨우 맞더라도 2회차 접종 시점에 백신이 모자라는 사례 등을 보면서 중남미 국가 사람들은 정부의 백신 관리를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히울리아나 콜라메오(29)와 그의 남자친구는 작년에 둘 다 코로나에 걸려봤기에 지난달 뉴욕의 한 약국에서 백신을 맞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는 "백신을 줄 때 거의 울었다. 안도감과 희망을 느꼈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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