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아온 '지붕 위의..' [문화프리뷰]

2021. 5. 1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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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중매쟁이가 맺어준 여인과 30여년을 살았다. 그것도 잘 살았다. 서로 아끼며 아이를 낳고,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자식들은 부모와 다르다. 군소리 없이 어른들 말씀에 복종하던 기성세대와 달리 자유롭게 연애도 하고 잘도 연인을 찾아낸다. 가난한 우유장수 테비에의 딸들도 마찬가지다. 과연 러시아령 유대인 마을 아나테브카는 이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게 될까. 창단 60주년을 맞은 서울시뮤지컬단이 2021년 정기공연으로 오랜만에 막을 올린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전개되는 무대 위 이야기다.

서울시뮤지컬단 제공


우리에겐 1964년 제작됐던 뮤지컬 영화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소설에서 출발했다. 유대인 작가였던 숄렘 알레이헴(Sholem Aleichem)이 쓴 〈테비에와 딸들〉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이다. 소설이 발간된 것은 1894년으로 뮤지컬 제작이 1964년, 뮤지컬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 1971년이니 무려 70~80년이나 앞서 세상에 선보였던 셈이다.

뮤지컬에서 전통을 상징하는 지붕 위에 서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는 사실 샤갈의 그림에서 비롯됐다. 러시아계 벨라루시안 지방 출신의 프랑스인이었던 샤갈은 많은 작품에서 유대인 특유의 문화와 정서를 담아냈던 것으로 유명한데, 1912년 그가 그린 지붕을 밟고 서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Fiddler)’는 이 작품 속 이미지의 모티브가 됐다. 실제 초창기 뮤지컬의 포스터 이미지로 그의 그림이 차용되기도 했었다.

배우들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 무대에서 테비에 역의 초연으로 등장한 것은 제로 모스텔이다. 그는 영화가 원작인 유명 코미디 뮤지컬 〈프로듀서스〉의 원작 영화에서 손만 대면 무조건 망하는 공연제작자 맥스 역으로 나왔던 바로 그 배우다. 많은 애호가가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를 모았던 모스텔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아닐까 기대했지만, 그러나 정작 메가폰을 잡은 노만 주이슨은 영국에서 활약하던 이스라엘 배우 토폴을 캐스팅하는 파격을 감행했다. 제로 모스텔의 너무도 많이 알려진 이미지와 사생활이 오히려 영화 속 테비에의 느낌을 반감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영화 제작진의 도박은 잭폿을 터트렸고, 토폴은 심지어 영화 〈노팅힐〉에서 윌리엄 대커의 책방에서 일하는 마틴이 자신도 길거리에서 유명인을 봤다며 그 이름을 거론할 정도로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가 됐다.

주옥같은 선율의 노래들, 유대인 결혼식 장면, 엔딩 신에서 제정러시아 시절 차르의 민족이동 정책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는 눈물 나는 풍경 등은 진한 뒷맛을 곱씹게 만드는 이 뮤지컬의 명장면이다. 모자 위로 반쯤 남은 와인 병을 올리고 무릎을 굽혀 춤추는 보틀 댄스는 연출자이자 안무가였던 제롬 로빈스가 남긴 공연사의 위대한 유산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황량해진 요즘 문화예술계와 우리의 메마른 감성을 촉촉이 적셔줄 것 같아 무엇보다 반갑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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