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나쁜사람'은 출국금지 요건이 아니다

이종현 기자 2021. 5. 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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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43건, 9241건, 1만113건.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법무부가 승인한 수사목적의 출국금지 건수다.

2019년의 경우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기관이 법무부에 요청한 출국금지 건수는 1만244건이었는데 법무부는 이중 98%를 승인했다.

검찰이 밝힌 이 검사와 차 본부장의 공소사실을 보면 2019년 3월 당시 법무부는 김학의를 출국금지할 수 있는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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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현

9843건, 9241건, 1만113건.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법무부가 승인한 수사목적의 출국금지 건수다. 2019년의 경우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기관이 법무부에 요청한 출국금지 건수는 1만244건이었는데 법무부는 이중 98%를 승인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출국금지를 수사기관이 남발하지 않도록 법무부가 관리해야 하지만 ‘드라이브 쓰루'나 다름없을 정도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법무부의 출국금지 심사가 남용을 통제하거나 제어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다. 법이 정해놓은 요건대로 출국금지 심사를 엄격하고 철저하게 할 것을 주문했다.

지난 5월 7일 시작된 이규원 검사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에 대한 재판이 중요한 이유다. 이 검사와 차 본부장은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별장 성접대와 뇌물 수수 의혹을 받고 있던 김 전 차관이 2019년 3월 태국으로 출국하려 하자 법무부는 긴급 출국금지를 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법무부 공무원과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 검사가 서류를 조작하는 등 불법을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검사와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의 위법한 법 집행이다. 김학의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가리는 게 아니다.”

재판을 시작하면서 검찰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했다. 김학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건설업자에게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형이 선고됐고,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별장 성접대 동영상은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이유로 불법적인 법 집행이 용인될 수는 없다. 검찰이 밝힌 이 검사와 차 본부장의 공소사실을 보면 2019년 3월 당시 법무부는 김학의를 출국금지할 수 있는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수사지시를 따르기 위해 서류를 조작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출국을 금지한 것이다.

김학의는 법무부 차관을 지낸 최고의 법 전문가다. 하지만 그가 가진 법 지식은 법무부의 불법적인 출국금지 앞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하물며 평범한 국민이라면 더욱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출입국관리법 제4조는 출국금지의 요건을 정의하고 있다. 그중 어디에도 ‘나쁜 사람’은 없다. 나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이 보장한 이동권을 제한한다면 그 나라는 더이상 법치국가라고 할 수 없다. 김학의 사건에서 나타난 절차적 문제에 대해 공론화에 나선 박준영 변호사는 “법에 여론이 지나치게 개입하면 법적 정의가 무너진다”고 했다.

2019년에 1만113명이 수사목적으로 출국금지를 당했다. 김학의도 그 중 한명이었다. 나머지 1만112명 중 또 몇 명이나 김학의처럼 잘못된 절차를 거쳐 출국이 금지됐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이번 재판은 그래서 중요하다. 법무부와 검찰, 경찰이라는 무소불위의 법 집행기관이 한 사람의 국민을 상대로 위법한 법 집행을 한 것에 대해 확실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김학의처럼 불법적인 출국금지를 당하는 사람이 또 나올 것이다. 그 사람은 김학의처럼 나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가족과의 휴가를 위해 어린 딸의 손을 잡고 공항을 찾은 평범한 가장일 수도 있다.

나쁘다고, 밉다고 법의 기준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법원 앞을 지키는 정의의 여신 디케가 왜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지 떠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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