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 인공지능 스승벗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2021. 5.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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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스승벗’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어 ‘사우(師友)’를 우리말로 옮긴 표현이다. 벗인 동시에 스승이라는 뜻이다.

명대에 이지라는 사상가가 있었다. 기인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기행은 자유로운 정신과 진보적 사유의 자연스러운 발로였다. 오죽했으면 자기 책은 출판되면 관에 의해 불살라질 것이라 하여 책 제목을 <분서>, 그러니까 ‘불살라진 책’이라고 붙였을 정도다. 불살라져야 하는 건 기존 질서와 권위였지만, 결국 불살라지는 건 자신의 사유임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스승에 대한 사유도 마찬가지였다.

“스승과 벗은 본래 하나다. … 옛사람들은 벗이 중요함을 알았기에 특별히 스승벗이라 함으로써 벗 삼을 만하면 다 스승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함을 표방했다. 스승으로 삼기에 부족하면 벗으로도 삼지 못한다.”(<분서>)

언뜻 이지가 스승과 벗 모두를 중시한 말로도 읽힌다. 그러나 그가 중시한 것은 ‘스승’이 아니라 ‘스승의 역할’이었다. 벗은 모름지기 스승 역할을 해야 참된 벗이고, 그러한 벗이 있으면 스승이라는 존재를 따로 둘 이유가 없다는 사유다. 벗이 수평적 관계라고 한다면 스승은 수직적 관계다. 이지는 가르침과 배움은 수평적 관계에서 행해져야 하는 만큼 이를 스승과 제자라는 수직적 관계에 얽어매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수천년간 지속된 스승의 위상을 정면으로 부인했음이다.

스승은 문명의 창출과 갱신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온 핵심장치다. 스승은 꼭 필요한 존재이기에 모든 스승을 벗으로 대체하는 건 무리다. 이지의 스승벗이란 사유가 급진적인 이유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러하다고 할 수 있을까?

스승이 문명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음은 지식을 인간 신체에만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눈앞의 현실에서는 지식이 인공지능(AI) 같은 신체 밖에 훨씬 많이 집적되고 있다. 게다가 AI는 스스로 학습하면서 지식을 확장, 심화해 가는 등 지적 처리 역량이 눈부시게 진보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인류가 AI를 스승으로 삼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 스승벗은 어떠할까? 인간과 AI 간 협업이 미래의 일상이 되리라는 예측은 이미 실현되고 있지 않은가.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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