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잡은 분들에게[이정향의 오후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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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네티컷주의 자연보호구역 길(레저베이션 로드)에서 뺑소니 사고로 열 살짜리 아들을 잃은 에단.
에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자 변호사를 구하는데, 하필 그의 아들을 죽인 드와이트가 맡게 된다.
이혼한 아내랑 사는 아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그는 범법자가 되면 아들을 더 이상 못 볼 거라는 두려움에 뺑소니를 쳤다.
그날 이후로 음주운전 사고 뉴스를 접할 때면 그 차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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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 저녁, 인왕 스카이웨이 산책로를 걷다가 아찔한 경험을 했다. 승용차가 중앙선과 보도를 지그재그로 넘나들며 내 앞으로 돌진해왔다. 게다가 역주행이었다. 내 오른쪽은 돌담이었기에 피할 곳이 없었다. 비명을 지르며 두 팔을 뻗자, 차는 중앙선 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순식간이었다. 갈지자로 달아나는 차의 번호판은 어두워서 보지 못했다. 내 평생 처음으로 112를 눌렀다. 역주행인 걸로 보아 음주운전 같았고 인명 사고를 낼 가능성이 컸기에.
에단의 아들 사건을 맡은 경찰은 범인이 자수하지 않는 한 도리가 없다며 포기하지만 에단은 드와이트가 범인임을 알아낸다. 총까지 구입하고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지만, 드와이트는 자신도 죽도록 괴로웠다며 때늦은 사과를 한다. 하지만 에단에게 잡히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자수를 했을까? 계속 스스로에게 핑계를 만들며 아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드와이트는 에단의 총을 빼앗아 자신의 머리를 겨눈다. 죄책감에 매일 죽고 싶었다고 절규하면서도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는다. 가해자의 처지가 아무리 힘들어도 피해자와 유족의 고통에는 빗댈 수 없다. 고통의 깊이도 결코 알지 못한다. 죽을죄를 지었다고 하면서도 자신에게 내려진 형량을 줄이고자 탄원서를 부탁하고, 항소하는 이들을 많이 봐 왔다.
그날의 내 얘기를 마저 하자면, 경찰은 그 차를 잡지 못했다. 그 차 때문에 다쳤다는 진단서나, 내게 달려드는 차의 사진이 없으면 사고 접수도 안 된다. 그런고로, 하마터면 죽을 뻔하기만 한 나로서는 폐쇄회로(CC)TV를 요청할 수도 없다. 운전자가 상습범일 수도 있어 앞으로 생길 사고를 막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음주운전 사고 뉴스를 접할 때면 그 차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다. 다시는 음주운전을 안 하길 두 손 모아 빈다.
이정향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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