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에서 삶은 더 진중.. 군대는 인생을 배우는 도량"

조정진 2021. 5. 12. 02: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불교 에세이 '부처님 군대 오신 날' 펴낸 군법사 지용 스님
군인과 군종은 평소 입는 것이 수의
늘 죽음 기억.. 겸허하게 살아가게 돼
처음 배치 받은 전방부대서 한 일은
짓다 만 교회 완공.. 종교 교류 촉진
생사를 코앞에 둘 때 절로 간소해져
군대는 스님들 수행처와 많이 닮아
군법사 지용 스님(왼쪽에서 세 번째)이 불자 병사들과 환담 중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출가자로 살면 남들보다는 죽음의 의례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게다가 병영에서 생활하면서 죽음은 더더욱 가까운 일로 다가와 있습니다. 평소에도 늘 수의(壽衣)를 입고 산다는 것이 군인과 군종은 서로 같습니다. 그만큼 사는 일에 진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20년 동안 현역으로 복무하고 있는 군종법사(軍宗法師) 지용(45) 스님이 그동안 외부세계에 잘 안 알려진 ‘군대 내 불교’ 이야기를 담은 종교 에세이 ‘부처님 군대 오신 날’(맑은소리맑은나라)을 펴냈다. 군법사 지용 스님의 본명과 군대 내 계급은 구윤호 중령이다.
지용 법사는 “위험한 훈련과 업무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수많은 안전대책이 크게 발달한 곳이 군대이므로 자살 등 부대 내 사고는 일반사회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무거운 죄책감이 든다”며 “늘 죽음을 기억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삶의 가치가 더욱 잘 보이게 되고 더욱 진지하고 겸허하게 살아갈 줄 아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군법사는 군부대에 배치돼 군법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포교하는 스님을 말한다. 1999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과 동시에 출가한 지용 스님은 2001년 군법사로 임관돼 3사관학교, 육군본부 군종실을 거쳐 현재 육군 충의부대 충의사에서 주지로 수행 중이다.

책에는 군법사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는 스님들 이야기, 군법당의 부처님오신날 풍경, 군종법사와 군종목사, 군종신부를 돕는 군종병 에피소드,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 등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군인이자 수행자로서의 삶을 사는 군법사들의 소소한 일상도 만나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군승의 역사는 6·25전쟁 직후부터 활성화된 군목·군신부에 비해 비교적 짧다. 1968년 월남전 때 군승 5명 첫 파송을 기점으로 2005년 대한불교조계종에 군종특별교구가 설립돼 현재 140여명의 군법사가 전국 400여 군법당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각 종단은 예비신자 황금어장인 군대에서 전도·포교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불교 이외에도 기독교·천주교·원불교에서 군종 성직자를 파견하고 있다. 10개 교파에서 군목을 파견하는 기독교는 1000여개의 군교회(충성교회)에 300여명의 군목이 복무하고 있다. 가톨릭은 성당(맹호성당) 300여개에서 100여명의 군신부와 50여명의 수녀가 예수님 말씀을 전하고 있다. 2007년 처음으로 군종교무를 파견하기 시작한 원불교는 3명이 16개의 군종교당(열쇠교당)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지용 법사가 처음 배치받은 전방부대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를 짓는 일이다. 목사였던 전임 군종이 교회를 짓다가 떠났기 때문에 그가 물려받아 완성했다고. 이런 일은 해외파병 부대에선 흔한 일이다. 부대 규모가 작아 각 종단을 대표해 한 명의 군종이 파견되기 때문에 군법사가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도 챙겨야 하고, 반대로 군목이나 군신부가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불자 병사들이 연등 만드는 일도 거들어야 한다. 자연스레 종교 간 교류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지용 법사는 군승으로서의 애로사항도 담았다. 일반 사찰은 부처님오신날이 1년 중 ‘시주’가 가장 많은 날이지만 군법당은 외려 ‘지출’이 가장 많은 때라고. 법회에 참석하는 병사들에게 나눠 주는 초코파이 살 돈은 모자라는데 시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군승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포교를 위해 온갖 정성을 들여 초파일이 무슨 날인지 일깨워 놓으면 전역해 버리고, 또다시 빡빡머리 이등병들이 새로 들어오는 걸 수시로 반복해야 하는 아쉬움 겸 설렘이다.

물론 보람도 적지 않다. 난생 처음 부모 곁을 떠난 청년들이 고된 훈련 틈틈이 쭈그리고 앉아 그동안 못 느꼈던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 표현을 손글씨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부쳐주고, 또 사랑 가득 담긴 부모님의 답장을 전해주는 일의 보람을 ‘부처님의 가피(加被)’로 표현했다.

“귀한 자식을 군에 보내며 이별한 부모의 마음을 사실 다 알지 못합니다. 더불어 그 부모를 떠난 불안하고 애절한 자식의 마음도 다 헤아리긴 어렵습니다. 그 절절한 마음을 넘어서는 법문을 나는 전해 줄 자신이 없습니다. 그저 부모님의 편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겸허하고 순수해지는, 또 힘을 내고 치유가 되는 그네들을 보며, 내 법문이 그 절절함을 넘어설 수 있을까 늘 반문하게 됩니다.”

“진짜 수행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순간에 드러나는 법이라고 하셨던 어른들의 말씀이 병영에서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는 지용 법사는 “숨 한번 들고 나는 순간에 있는 목숨, 그 귀한 무게를 군인들은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며, 이 때문에 군대가 스님들의 수행처와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고백한다. 그가 군승을 지속하는 이유이다.

지용 법사의 은사 송강 스님은 제자의 군포교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격려해 주고 있다. “수행자에게는 군부대도 도량이다. 그 도량을 여법하게 만들어 연화장세계로 만드는 것이 군법사의 소임이다. 복장이야 어떠하건 마음과 언어와 행위를 보면 그의 수행이 보인다. 책을 통해 내가 본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었다. 바른 관심은 연민과 사랑(자비)으로 전개되는 것이며, 바른 열정은 끝없는 정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지용 수좌가 헛되이 시간 낭비하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지용 법사는 책을 마무리하며 화두를 하나 던졌다. “생사를 코앞에 두고 사는 사람들은 저절로 간소해집니다. 늘 깨어 있으라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군대에 대해 오해·걱정·비난이 많은데, 군대 역시 사람 사는 곳이니 인생을 배우는 곳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용 법사의 설법에 맑은 향기가 배어나온다.

조정진 선임기자 jjj@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