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세 청년의 웹소설앱, 카카오가 5000억에 샀다
31세 이승윤 대표 인터뷰
“텍스트가 가진 힘을 믿고 한국 웹툰의 성공 방정식과 미국 할리우드식 제작법을 융합한 웹소설 플랫폼을 만든 게 제대로 통했습니다.”
2016년 미국에서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를 창업한 이승윤(31) 대표가 잭팟을 터뜨렸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가 래디쉬를 5000억원에 인수한다고 11일 발표한 것이다. 한국인이 만든 스타트업으로는 올 들어 하이퍼커넥트(영상채팅·2조원)·지그재그(여성패션 플랫폼·1조원)에 이어 셋째로 큰 인수 규모다. 다만 최대주주인 이 대표의 지분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래디쉬는 영문 웹소설 플랫폼. 미국 할리우드식 ‘집단 창작 시스템’과 한국 웹툰식 ‘먼저 보려면 유료, 기다리면 무료’ 모델을 결합해 급성장했다. 이 대표는 “줄거리만 짜는 PD, 메인 집필 작가, 보조 작가, 요약만 쓰는 작가로 세밀하게 분업화했다”며 “이런 방식으로 하루 5편을 무리 없이 연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 1년을 거치며 유료 구독자가 크게 늘었고 덕분에 지난해 매출(230억원)이 1년 전의 10배 넘게 늘었다.
래디쉬는 창업 초기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창업하던 해 네이버웹툰이 초기 투자자로 참여했고 2019년 카카오페이지(현 카카오엔터)가 소프트뱅크벤처스 등과 같이 760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마지막엔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네이버는 지난 1월 글로벌 1위 웹소설 업체 ‘왓패드’를 6500억원에 인수했다. 이 대표는 “네이버는 이용자를 먼저 모으는 플랫폼 전략이라면 카카오는 돈을 벌 수 있는 콘텐츠를 우선 확보하는 전략인데 카카오의 전략과 청사진이 우리와 맞았다”고 했다.
네이버가 인수한 왓패드는 사용자만 9000만명이다. 월 이용자 100만명인 래디쉬와는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이 대표는 “래디쉬는 1만개가 넘는 작품들을 100% 소유하고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왓패드는 작가가 소유한 작품을 무료로 올리고 광고로 돈을 버는 유튜브 모델이라면 우리는 오리지널 콘텐츠로 돈을 버는 넷플릭스 모델”이라며 “래디쉬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웹툰·드라마·영화로 무궁무진 확대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엔터가 사용자가 왓패드의 10분의 1수준인 래디쉬를 네이버의 왓패드 인수가와 비슷한 금액으로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인수 이후에도 이 대표는 래디쉬 경영을 계속하면서 카카오엔터의 글로벌 전략 담당을 겸한다. 그는 “카카오엔터의 웹소설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번역해서 유통하는 작업과 래디쉬의 소설들을 북미에서 웹툰화하는 작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윤 대표는 영국 옥스퍼드대 유학생 출신이다. 2012년 학생회 격인 ‘옥스퍼드 유니언’ 회장에 한국인 최초로 당선돼 주목을 받았다. 옥스퍼드 유니온은 보리스 존슨 현 총리를 비롯해 글래드스턴, 솔즈베리 등 역대 영국 총리 여럿이 학창 시절 활동했던 단체다. 정치·철학·경제학부를 다녔던 그는 2014년 ‘바이라인’이라는 이름의 인터넷 매체를 만들었다. 그는 “위키리스크 창업자 줄리언 어산지를 인터뷰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바이라인의 첫 투자자가 이재웅 다음 창업자였다. 이재웅 대표는 “아이디어는 남에게 조언받고 베껴서 얻는 게 아니다. 혁신은 너 자신만이 하는 것이다. 자문 쇼핑을 다니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는 직접 취재도 하며 현장을 뛰었다.
창업 후 한동안 수익을 내지 못해 2015년 말 자금난에 빠졌다. 매체를 운영하며 텍스트의 힘을 체험한 이 대표는 한국에서 뜨고 있던 웹소설을 보고 미국 실리콘밸리로 날아가 도전에 나섰다. 아마추어 작가들을 하나하나 영입해 한국식 ‘기다리면 무료’ 방식으로 연재하는 방식이었다. 2018년 수 존슨 전 ABC 부사장 영입을 계기로, 할리우드식 집단 창작 방식을 도입했다. 이 대표는 “이때부터 회사가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래디쉬를 글로벌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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