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그림'으로 되살린 역 주변 풍경.."퇴색한 사진 같은 감성 느끼게 하죠"
[경향신문]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가면 황간역이라는 작은 역이 있다. 역사의 한쪽 구석에는 작은 갤러리가 하나 있는데 요즘 여기에서 이색 그림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의 제목은 ‘우리 동네에서 사라진 풍경과 이야기들’이다.
앞에 낡은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진성식당, ‘올뱅이(올갱이의 이 지역 사투리)국밥’을 파는 안성식당, 동네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져온 정일약방…. 정비사업으로 사라지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했지만 황간역 인근 주민들의 머릿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건물들이 ‘커피화’로 되살아났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강병규 전 황간역장(63)이다. 2012년 12월부터 2018년 12월 말까지 6년간 황간역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강 전 역장은 마을이 사라지기 전 찍어뒀던 사진을 보며 그린 작품 15점을 전시회에 내놨다. 지난 5일 황간역 갤러리에서 만난 강 전 역장은 “황간역 인근에서만 37년째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원래 그림을 잘 그려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연 경력이 있는 강 전 역장은 2019년부터 시행된 정비사업으로 철거된 황간역 인근 마을 풍경을 커피를 이용해 하나씩 그렸다. 커피로 그리는 ‘커피화’는 그가 요즘 푹 빠져있는 분야다. 커피를 붓으로 찍어 농담을 조절해가면서 종이 위에 그린 그의 커피화 작품은 사람들의 추억을 소환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아련한 추억으로 빠져들게 하는 데는 커피화가 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퇴색한 사진 같은 감성을 느끼게 하거든요. 가능한 한 커피로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부분만 색연필 등을 이용해 채색을 했어요.”
강 전 역장은 철도업계에서 ‘전설’로 통한다. 1974년 철도고에 입학하면서 철도와 인연을 맺은 그는 1976년 12월부터 42년 동안 ‘철도밥’을 먹었다. 그는 어쩌면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작은 역을 알리는 데 힘을 보탰다.
그가 은퇴할 때까지 6년간 근무한 황간역은 그의 노력 덕분에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물역으로 변신했다.
갤러리에는 강 전 역장의 그림 이외에 재미있는 자료도 많다. “지난 17일 아침 10시 반경 황간역 홈 안에서 37세 여성이 옥동자를 분만했다”는 내용을 담은 1956년 8월22일자 경향신문 기사, 인근 마을에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지금은 사라진 마을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 등 자료 15점도 함께 전시돼 있다. 전시 기간은 오는 31일까지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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