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도상품 판매규정 늑장 공지.. 펀드판매 무더기 중단

이윤형 2021. 5. 1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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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일 임박해 은행권에 알려
90개 상품 판매 일시중지 사태
이사회 의결 등 절차 필요 혼란
"녹취·숙고제도 시장 축소 우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숙려제가 시행이 은행 펀드 시장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연합뉴스>

복잡하고 위험이 큰 금융투자상품에 녹취·숙려 제도가 시행되면서 시중은행의 펀드 상품 90개가량이 판매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새 제도에서 고난도 상품을 판매하려면 이사회 의결, 상품설명서 수정 등 절차가 필요한데, 구체적 규정이 시행일이 임박해서야 고지되면서다.

은행권은 일시적 중단이라는 입장이지만, 새 제도가 불러일으킨 혼란이 은행 펀드 시장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기업은행은 이날부터 94개(중복포함) 상품의 판매를 멈췄다. 판매가 중단된 상품은 대부분 상장지수펀드(ETF)를 편입한 국내주식 파생형 증권투자신탁이나 해외 채권 등에 투자하는 역외펀드였다.

앞서 금융당국은 원금 20%를 초과하는 손실이 날 수 있는 파생결합증권 등 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펀드·투자일임·금전신탁계약을 '고난도 금융상품'으로 정의하고, 지난 10일부터 이런 상품의 판매 과정을 녹취하고, 2영업일 이상의 숙려기간을 보장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시행했다. 이는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해소하고 유사한 피해 재발을 막기 위해 마련된 조치다.

은행 펀드 시장 혼란은 예고된 결과였다. 새 규제에 따라 은행이 고난도 상품을 판매하려면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하고, 상품 설명서에는 '손실위험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결과'와 '해당 상품의 목표시장 내용 및 설정근거'가 포함돼야 하지만, 구체적 규정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관련 내용 보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고난도 금융상품의 정의,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에 필요한 절차, 투자설명서에 들어가야 할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담긴 '금융투자업규정 일부개정규정'은 제도 시행 1주일 전인 지난 3일에야 발표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 규칙이 촉박하게 나와서 상품설명서 등 준비 작업을 마치지 못했다"며 "일단 판매를 중지하고 내용이 보완되는 대로 판매를 재개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일단 정비 작업에 돌입한 상황이지만, 이를 계기로 은행 펀드 시장이 대폭 축소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번에 중단된 상품들이 이사회가 열린다고 그대로 재개될 것이란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고난도 상품을 판매하는데 은행이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하는 과정 자체가 판매 상품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은행에 더 큰 책임을 묻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지난 3월부터 본격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까지 맞물리면서 가뜩이나 위축된 펀드 판매가 더 줄어들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금소법은 금융투자상품에만 적용하던 '6대 판매 규제'를 모든 금융상품에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6대 규제란 상품 판매 시 적합성·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불공정 행위·부당 권유·과장광고 금지 등의 원칙을 말한다.

금소법 시행은 소비자 보호를 위함이지만 현장에서는 판매자에게는 과한 부담을 주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금소법은 금융회사가 '6대 규제' 일부를 어기면 상품 판매 수익을 '징벌적 과징금'으로 내도록 하고,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도록 규정한다. 또 금융상품 가입 시 의무적으로 각종 녹취와 설명서를 발급하는 것을 의무화 시키면서 소비자에는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반응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소법 이후 부담이 커진 탓에 직원들의 상품 판매 권유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보면된다"며 "상품 가입이 진행되더라도 가입 절차가 복잡해지고, 장시간이 소요되면서 민원만 늘어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내에서는 은행이 파생결합증권 판매의 최대 창구라는 점에서 이미 쪼그라든 시장 규모 자체가 더 줄어들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미 파생결합증권 시장은 급격히 작아지고 있다. 지난달 금감원이 발표한 '증권사 파생결합증권 발행·운용 현황'에 따르면 작년 말 파생결합증권 발행 잔액은 89조원으로 전년 대비 19조2000억원 줄었다. 이는 2014년(84조1000억원) 이후 최저치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지난해 사모펀드 연계 파생결합증권(DLS)의 상환 중단 등으로 DLS 투자 수요도 위축된 영향이 크지만, 금융당국이 원금 비보장형 파생결합증권(DLS)의 일괄 신고를 금지하는 등 고위험 금융상품 규제를 도입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윤형기자 ybro@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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