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잘 안다 생각했다, 노란 쪽지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Guideposts]

정순민 2021. 5. 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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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기도 릭 햄린
부모님이 돌아가신후 책장을 정리하다
성경책 사이에서 발견한 노란 종이
하나님에게 쓴 아버지의 편지였다
"왜 저는 자신감이 없고 부정적일까요"
문득 자주 술을 드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믿음 깊고 가족들에 헌신적이던 사람
사실은 내면의 고뇌와 싸우고 계셨다
술로 그 불길을 끄려 애쓰셨던 거다
곁에 계셨다면 안아드리고 싶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사는 릭 햄린은 어머니의 집을 정리하다가 9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성경책과 그 속에 숨겨져 있던 기도문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평소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고백이 적혀 있었다. 매사 긍정적이었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다른 기도문을 보면서 아들은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아버지를 사랑하십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아들은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몇 주 지나서 우리는 패서디나에 있는 어머니의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9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이해하고 있고,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애도 과정을 충분히 거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서가에서 성경책 한 권을 발견했다.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페이지 모서리가 접힌 데도 없었다. 여러 권의 성경책 중 서가에 있는 한 권이었다. 우리 네 남매는 각자 좋아하는 책을 고른 후 남은 것들을 도서관의 연례 모금행사에 기부하기 위해 포장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성경책이 더 필요하지 않았다.

그 성경책을 기부상자에 넣기 전에 나는 먼지를 떨어내고 아무런 표시도 돼 있지 않은 책장들을 목적 없이 넘겼다. 1990년대에 출판된 비교적 최신판이었고, 질 좋은 가죽으로 장정돼 있었다. 서명도 없고 장서표도 없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책이었다.

그때 줄이 그어진 노란색 종이 한 장이 빠져나왔다. 뭔가 적혀 있었다. 글씨체를 곧바로 알아보았다. 아버지의 것이었다. 글자는 전부 대문자로 쓰여 있었다. 생전에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서 오려낸 기사를 간단한 메모와 함께 우리에게 보내주시곤 했기 때문에 너무나 익숙한 글씨체였다. 포스트잇에 쓰인 메모는 "네가 이걸 좋아할 것 같았다"라든지 "네 생각이 나더구나" 혹은 "이걸 읽고 낄낄 웃었다"와 같은 것이었고, 거의 언제나 우리 네 남매에게 항상 하시는 이 말씀으로 끝이 났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사랑한다."

아버지는 우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지금 그 사실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다. 이 노트에 적힌 글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경쾌한 메시지일지 궁금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 보내는 기도였다. "하나님 아버지." 글은 이렇게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저에게는 아내와 아이들, 손주들, 가까운 친구들, 동료, 동반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이 있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하시던 두서없는 기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기도는 퇴근길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뉴스 한토막이나 다가오는 시험이나 피아노 공연, 혹은 우리를 위해 하시는 한두 가지의 소원 그리고 어머니가 만든 미트로프나 맥앤치즈에 대한 언급으로 항상 끝이 났다. "저희의 일용할 양식과 그것을 준비한 손에 축복을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기도에는 너무나 많은 정보가 들어 있어서 가족의 친구 한 분이 '6시 뉴스'라고 이름을 붙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 기도는 훨씬 더 깊고 내밀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찌하여 저는 자신감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을까요? 왜 일상에서 부정적인 것들과 단점들만을 보는 걸까요? 제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결점을 생각하는 걸까요!!"

느낌표가 두 개였다. 그러니까, 왜요?

페이지 위쪽에 휘갈겨 쓴 날짜를 보았다. 70대 초반에 쓰신 글이었다. 경력을 화려하게 마무리하신 뒤였다. 아버지는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명분에 충실한 기금 모금 전문가였다. 패서디나 로즈 퍼레이드에서 자원봉사로 회장직을 맡아 1983년부터(우리 네 남매를 모두 데리고) 행사를 이끌었다. 이듬해 LA에서 올림픽이 열렸을 땐 요트 경기장을 총괄하셨다. 아버지 본인도 수상 경력이 있는 요트 선수였다. 그런데 자신감이 결여되었다고?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문득 아버지가 저녁마다 술을 마시던 모습과 그 모습이 나를 얼마나 초조하게 만들었는지가 떠올랐다. 저녁식사 전부터 채워져 있던 스카치나 보드카 잔은 어머니가 잠자리에 드신 지 한참 지난 늦은 밤까지 끊임없이 채워졌던 것 같다. 가끔 농구 게임을 같이 보자며 나를 부르시고는 직장에서의 갈등, 당신이 실망시킬까 걱정하던 동료, 또는 무심코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한 누군가에 대해 털어놓으셨다.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나에게 하시던 말이었다.

예민하다, 나처럼. 그런데 그렇게 심각하셨나? 그래서 그런 자가 치료가 필요하셨나? 아버지는 낮에는 절대 술을 드시지 않았다. 오로지 밤에, 집에서만 드셨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중독은 중독이었다.

그 단어를 적는 지금도 엄청난 죄악처럼 느껴진다.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던 우리 배우자의 가족 중 한 사람과 AA(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에서 그녀가 어떻게 도움을 받았는지 우리 네 남매가 함께 이야기를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쩐지 아버지는 이 노트에 자신의 상처받기 쉬운 성격을 고백할지언정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벽과 선반에 여전히 있는 오래된 가족사진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담긴 기념품이었다. 그중에는 할머니와 아버지 남매들이 함께 찍은 다정한 사진도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아버지가 복무하던 잠수함 사진도 몇 장 보였다.

바로 그거였다. 나 자신에게 이야기해 보았다. 태평양 어딘가를 잠행하는 잠수함에 19세 소년이 있다. 방금 공격한 일본군 호송대를 피해 필사적으로 후퇴하는 도중 너를 둘러싼 캄캄한 물속에서 폭뢰가 폭발한다. 금방이라도 바닷물이 너를 덮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을 겪으면 충분히 트라우마가 남지 않겠는가? 진주만으로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 아버지가 탔던 것과 비슷한 잠수함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무시무시한 밀실공포증을 느꼈다. 아버지가 그 안에 계셨던 수개월이 아니라 들어간 지 단 몇 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느꼈던 불안의 원초적인 트라우마를 찾고 싶었다. 할머니가 유방암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아버지의 십대 시절이었을까? '암'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못하고 그저 쉬쉬하던 시절에 할머니가 수술을 받고 살아남을지도 알지 못한 채 해변가의 친구들 집에 맡겨졌던 그 끔찍한 여름이었을까?

그래, 그런 일을 겪으면 평생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꾸 스카치나 보드카 잔을 든 아버지의 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내면의 고통으로.

아버지의 편지, 아버지의 기도는 아버지 성격의 본질 같은 것을 말해주었다. 그는 매일 힘겨운 싸움을 했다. 우리가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훌훌 털고 잊어버려라."

어머니 자신도 그렇게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감정을 붙들고 씨름했다. 하지만 그런 기질이 아버지가 좋은 남편, 헌신적인 아버지, 의리 있는 동료, 믿음이 깊은 사람이 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 예민함이 아버지를 아버지답게 한, 약자를 응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 묻고 나서 마지막에는 이렇게 썼다. "응어리를 없애 버려. 지금 당장!" 그러고는 "사랑한다"라는 말로 마무리하셨다. 우리에게 항상 그랬듯이.

어느날 아침 이 성경책을 읽으며 이 글을 쓰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일어나 삶을 살아가시는 모습을. 나에게 보낼 기사를 오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교회 모임에 참석하고, 감사편지를 쓰고, 후원하는 자선단체를 위한 보고서를 읽고, 자식이나 손주들의 생일선물을 사는 모습을. 마음이 아팠다.

노란색 종이를 바라보며 나 자신에게 필요한 기도에 대해 생각했다. 용서와 이해를 구하는 기도였다. 아니, 아버지는 완벽한 분이 아니었다.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겉모습이 어떻게 보이든지 간에 일상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알코올 중독자 같은 것은 없었다. 속으로는 끊임없는 고뇌와 싸우며 술로 내면의 불을 끄려고 애쓰셨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를 향한 우리의 사랑은 당신의 고통을 초월하게 한 삶의 큰 기쁨이자 지상에서의 구원이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아버지는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끊으셨다. 아버지가 음주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버지와 우리 모두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 대신 아버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었다.

"예수님,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혼자 이렇게 되뇌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한다는 것도 알았다. 아버지는 특히 더 그러셨다. 그 대신 그것을 '6시 뉴스'에서 털어놓았다.

나는 기도문을 성경책에 다시 집어넣고 집으로 가져갈 물건이 든 박스에 넣었다. 우리와 함께 공유한 기도든 아무도 보지 않는 성경책 속에 있던 기도든 아버지의 기도는 언제나 솔직했다. 그 점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도 감사드린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꼭 안아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었다.

"늦은 밤 저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아버지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사랑합니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의 후원을 통해 군부대, 경찰, 교정시설,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각계의 소외된 계층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통해 더 많은 이웃에게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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