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집념'이 만든 초일류 이건희 컬렉션..문화 국격 높였다
진동없는 5t 트럭 18대에 실린
1488점 미술품의 장쾌한 행렬
이제야 국가미술관 명성 걸맞게
소장품 1만점 시대 열어
연간 작품 구입비 50억 안돼
수백억대 작품 엄두 못냈는데
이중섭 '황소' 등 한국 근대작부터
모네·르누아르 서양 명화까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걸작들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받아
이건희 열정 깃든 방대한 미술품이
국민과 어떻게 호흡할 것인지
즐거운 고민 시작됐다
◆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이건희 컬렉션의 또 다른 특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열정'이라는 열쇠 말을 들고 싶다. 열정의 산물. 미술에 열정이 없다면 이룩할 수 없는 질과 양의 컬렉션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오랜 시간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다. 미술 작품을 보는 혜안이 없다면 이렇듯 다양한 분야의 수준을 이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작품을 입수하기 위해 해외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는 자세. 바로 미술품에 공을 들이는 자세, 그런 결과가 소장품으로 귀결됐다. 요약하면 열정, 전문성, 시간, 재력, 이러한 부분들이 모여 이건희 컬렉션으로 이어졌다고 믿는다.

작가 개인별로 보면 유영국의 경우가 최다를 이룬다. 유화 20점과 판화 167점으로 187점이다. 이어 이중섭으로 회화 19점 이외에 엽서화 43점, 은지화 27점으로 총 104점을 이룬다. 이중섭의 경우는 별도의 개인전을 개최할 수 있는 숫자여서 내년 봄에 공개할 예정이다. 유강열 68점, 장욱진 60점, 이응노 56점, 박수근 33점, 변관식 25점, 권진규 24점의 순서다.
이건희 컬렉션의 국가 기증 문제가 대두됐을 때, 나는 100점 정도만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이 국가 미술관이지 김환기의 대표적 점 시리즈 한 점 소장하고 있지 않기에 빠진 부분의 보완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중섭의 '황소'를 보자. 붉은 바탕에 역시 붉은색의 황소 머리를 근접해 표현한 작품이다. 황소는 마치 절규하듯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눈동자에 힘이 들어 있고, 역동적이면서도 절실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물론 식민지 시절의 소는 우리 민족의 상징이었다. 한우는 일본에서 보기 어려운 가축, 그래서 한우를 소재로 선택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민족성을 떠오르게 한다. '황소'는 6·25 전쟁 시기에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제작한 것이다. 더불어 이중섭의 '흰소'(1950년대)는 백의민족을 염두에 둔 하얀색의 소다. 고개를 숙이고 발을 모아 뭔가 전진과 저항하려는 자세, 그것도 하얀색의 황소, 울림이 큰 작품이다.

'절구질하는 여인'(1954) 역시 대작으로 아이를 업고 절구질하는 여인의 측면을 화면 가득 그린 국전 출품작이다. 박수근은 좋아하는 소재를 반복해 즐겨 그린 특징이 있다. 절구질하는 여인도 그렇고 빨래터의 경우도 그렇다.
김환기 뉴욕 시절의 점 시리즈. 1973년 작가 만년 절정기의 작품 '산울림'은 감동 어린 작품이다. 화면 구성은 크게 디귿(ㄷ) 형태의 구획을 상단에 두고 무수한 점으로 일정한 리듬을 두었다. 산 능선 가득 울리는 메아리 같은 점,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같은 점, 화가는 종신수(終身囚)처럼 뉴욕 시절에 점 연작을 제작했다. 이번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작품으로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를 들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통칭 2000호로 불리듯이 김환기의 작품 가운데 제일 큰 작품이라는 점, 그것도 구상 시기의 절정에서 화가 자신의 대표적 도상을 망라했다는 점에서 새삼 주목하게 한다. 원래 이 작품은 1980년대 중앙일보사 신사옥 로비에 걸렸던 이력이 있다. 당시 나는 그 건물에서 근무하면서 이 작품과 인연을 맺었다. 이 작품은 뒤에 호암미술관의 '근대유화 명작전'(1990)에 출품됐고, 또 '호암미술관 소장 한국근대미술 명품도록'(1992)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삼성에서 귀하게 아끼던 작품이었다. 만약 이 작품을 오늘 경매에 올린다면 시작 가격은 최소 300억원 내지 400억원부터여야 한다고 본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는 무가(無價), 즉 가격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기야 어디 김환기 작품만 무가이겠는가만은.


나는 1984년 호암갤러리 개관 당시 실무책임자로 일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아직 학예실이 없어 미술계에 큐레이터라는 직함조차 없을 때였다. 중앙일보사는 서소문에 신사옥을 신축하면서 아트홀과 더불어 전시 공간을 신설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창업주)의 특명에 따른 예술 애호의 구체적 산물이었다. 당시 큐레이터로 발탁됐던 나는 전시기획 업무를 진행했다. 갤러리 담당 임원은 중앙일보 상무이사 직함의 홍라희 관장이었다. 호암갤러리는 뒤에 삼성문화재단의 삼성미술관 리움으로 발전했고, 홍 관장의 빛나는 역할로 이어졌다.
이번 이건희 컬렉션의 국가 기증이라는 엄청난 쾌거를 맞이해 미술관의 품격은 수직 상승했고, 기증품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국격을 높이는 미술품의 기증, 이제 우리도 국제사회에서 얼굴을 들 수 있을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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